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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박멸 작전에 인간과 공생하던 바이러스가 역습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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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호 21면

에볼라(Ebola) 바이러스의 창궐로 지구촌이 난리다. 치사율이 최고 90%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 관계자는 “6주 안에 막지 못하면 발병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대체 에볼라가 뭐길래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 <7> 에볼라의 이면

이 교수가 색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방역(防疫) 문제가 아니라 문명학적인 지(知)의 최전선 차원에서 읽어보자는 것이다.

“우선 에볼라 바이러스라는 게 이번에 처음 생긴 게 아냐. 1967년 독일 미생물학자가 아프리카에서 발견해 파스퇴르 연구소에 분석을 의뢰하면서 알려졌지.”

“그런데 왜 에볼라라고 부르게 됐나요?”

“콩고에 있는 에볼라라는 작은 강 근처에서 발견됐거든. 그런데 병명은 조심해서 붙여야 해. 광우병 사태 때 경험했잖아. 공식 명칭인 BSE(소해면상뇌증)라는 용어를 안쓰고 광우병이라고 하니까 다들 얼마나 패닉이 됐나. 소가 미친 게 아닌데. 일본 신문은 BSE라고 썼는데 우리는 광우병이라고 썼지. ‘장질부사로 돌아가셨네요’ 하지 않고 ‘염병으로 돌아가셨네요’ 해봐. 뺨맞지. 특히 전염병 이름은 객관적으로 붙여야 해. 감정을 넣어 공포심을 조장하면 안 되는 거거든.”

“에볼라는 지역 이름이잖습니까.”

“마찬가지지. 왜 아프리카의 강 이름을 넣어서 아프리카에서 재앙이 오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느냐고. 문제는 전세계가 글로벌화로 월드 시스템이 됐기 때문에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아프리카에서 생긴 일이 세계적인 재앙이 됐다는 것이야. 옛날에는 풍토병이라 해서 그 지역의 일로 끝났는데.”

“다른 시각은요?”

“바이러스를 보는 인간의 인식에 대한 것이지. 파스퇴르 이후 모든 병은 바이러스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무조건 바이러스 죽이는 방법만 연구해온 셈이잖아. 하지만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인간과 상생해 왔거든. 모든 생명체가 다 함께 살아온 거 아냐? 그런데 인간이 세균은 무조건 죽여야한다고 하니까 세균이 이빨을 드러낸 거지.”

“자연의 복수인가요?”

“문명이 가져온 해악이랄까. 인간이 먼저 바이러스를 적으로 돌려놓고 공생할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역습이 시작된 것이지. 몇천 년을 같이 살던 바이러스가 신종이나 변종이 되어 인간을 공격하고 있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준비가 필요한데 우리는 너무 태평해. 지금 미국 회사가 백신을 만들고 있다지만 환자가 늘어날 경우 약을 구하기가 얼마나 힘들겠어. 백신이 부족할 경우 누구부터 맞혀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이 있나. 리스트도 미리 만들어놔야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시선을 돌렸더니 진짜 종군 기자가 된 느낌이다. 그동안 우리는 아프리카를 너무 몰랐다. 지구 반대편에서 생기는 일로만 알았는데 바로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인간은 지구의 지배자가 아니며 지구 공동 생명체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잃어버린 탓이다. 이 교수가 말을 이었다.

“과장 보도도, 과소 평가도 다 해를 줄 수 있지. 이럴수록 믿을만한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해. 정말로 중립적인 과학적이고 지적인 대응 말이야. 누가 말했던가, 우리는 에볼라와의 경쟁에서 스타트부터 지고 있다고. 그들(바이러스)은 민첩하게 조직적으로 앞서가는데 우리는 느린 걸음으로 뒤처지고 있다고.”

이 교수는 지금을 ‘지적 이종 격투기 시대’라고 불렀다. 어느 한 전공이나 지식만 갖고는 어림도 없는 세상이다. 아레나가 달라진 것이다.

“전염병은 인간과 인간의 접촉에서 나와요. 우리가 혼자 사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야. 그런데도 타자의 슬픔이나 가난은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하지. 에볼라 바이러스의 의미에 대해 10분만 검색하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느껴질 텐데.”

그래서 세균학은 인문학이 되고 정치학이 된다.

글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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