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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철학자 니체가 보내는 편지 고통에 맞서라, 순간을 즐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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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초인수업
박찬국 지음
21세기북스, 268쪽
1만 5000원

1년 전 만해도 출판계의 최대 화두는 ‘힐링’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놀라우리만치 눈에 띄질 않는다. 힐링이란 말의 달콤함만큼이나 유통기한도 짧았던 것일까. 아니면 근본적인 삶의 태도를 제시하지 못해서일까. 여기 힐링과는 대척점에 있는 책이 한 권 나왔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의 초인(超人) 정신을 바탕에 둔 『초인 수업』이다. 니체 연구가인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가 니체의 말을 빌려 삶에 대한 여러 질문에 매우 쉽게 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우리의 삶은 원래 고통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아픈 것은 당연하므로 거기에 맞서라”고 말한다.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을 경멸하고, 위험하게 사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얘기한다. 고통을 ‘힐링해라’가 아니고 ‘킬링해라’에 가깝다.

니체에게 ‘초인’이란 고난을 사랑하며 그에 맞서는 이다. [중앙포토]

 니체는 인간의 내면에는 끊임없이 자신을 고양하고 강화하려는 의지가 존재한다고 봤다. 삶이 힘든 것은 세상이 더 나빠진 게 아니라 자신의 정신력이 약해진 것이다. 그래서 고통과 시련에 맞서는 자를 ‘초인’, 안락만 탐하려는 자를 ‘말세인(末世人)’이라고 불렀다.

 이쯤 되니 니체가 우리에게 너무 대단한 정신력을 요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그런데 방법론은 그렇지 않다. 니체는 아이처럼 살 것을 제안한다. 유희의 상태 말이다. 우리가 어떤 재밌는 놀이에 빠져있을 때는 왜 이 놀이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냥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저자는 니체의 이런 철학을 ‘삶에 대한 찬가’라고 말한다. 목표나 의미 없이 기쁨 속에서 파괴와 창조를 거듭하는 디오니소스신의 자세다. 의미에 집착하는 순간 인생은 미로에 빠진다. 예술에서 충만함을 찾고, 신체를 단련해 영혼까지 건강하게 만들라고 제안한다.

 저자가 경계하는 것은 초인 정신을 “그대가 실패한 것은 노력 부족이다”라는 식의 ‘자유의지의 철학’으로 읽는 것이다. 초인은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자다. 예컨대, 니체가 살아있다면 그는 지금의 ‘88만원세대’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돈에 연연하지 말고 온 열정을 다 바쳐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라. 그리고 어떠한 곤경이 와도 그것을 자기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면서 흔쾌하게 받아들여라. 그래서 공동체를 변혁하라.”(265쪽)

 책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니체의 삶 또한 고통의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5세에 스위스 바젤 대학의 교수가 됐으나 병 때문에 10년도 안 돼 교수직을 사퇴하고 학교에서 나오는 쥐꼬리만한 연금으로 가난하게 일생을 보냈다. 제자를 사랑했지만 그의 사랑을 얻지 못한 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출간하는 책들은 하나같이 주목 받지 못했고, 45세에 광기가 엄습하면서 10년을 병석에서 식물인간처럼 살다 죽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는 누구보다 인간의 잠재력을 믿었던 사람이다. 힐링도 통하지 않는 이 험난한 시대에 니체를 믿고 ‘당신의 배를 미지의 바다로 보내는 것’은 어떨까.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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