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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피아·정피아 차단 되자 속도 올리는 금융권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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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회원사들이 알아서 좋은 사람을 뽑아라. 다만 관피아(관료+마피아) 출신은 안된다.’

 신임 협회장 선출을 앞둔 생명보험협회에 최근 전달된 정부의 메시지다. 재무부 관료 출신의 김규복 현 회장의 임기는 올 12월까지다. 당국의 명확한 입장이 나오자 차기 회장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됐다. 눈치를 보던 후보들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관피아가 빠진 자리에 이수창 전 삼성생명 사장과 고영선 교보생명 부회장 등 민간 출신 경영자들이 경합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관련 협회에서 관피아를 배제한다는 원칙은 당분간 지켜질 분위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익단체인 협회장을 관료출신이 차지하는 관행은 문제가 있다는 게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의 컨센서스”라며 “앞으로도 각종 협회장 선거에서 관료출신은 배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박병원 회장(경제기획원 출신)의 임기가 다음달 만료되는 전국은행연합회에도 오랜만에 민간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올 예정이다. 은행들이 출자한 은행연합회의 역대 회장 10명 중 박 회장을 포함한 7명이 관피아였다. 9월 LIG손해보험 출신의 장남식 회장이 취임한 손해보험협회에 이어 생보협·은행연의 수장이 민간 출신으로 물갈이되면 7개 금융업권별 협회장 중 관료 출신은 김근수 여신금융협회장과 최규연 저축은행중앙회장만 남게 된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금융투자협회·화재보험협회를 두 곳을 제외하곤 협회장을 모두 장악했던 관피아가 순식간에 소수파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민간 출신 금융 협회장이 대거 탄생하면서 회원사와 협회, 당국간 역학 관계에도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협회는 본질적으로 회원사를 대변하는 이익단체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협회에 위임한 각종 자율규제 권한과 고위 관료출신 협회장의 인맥과 힘이 결합하면서 그간 회원사들에 ‘상전’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회원사들을 위해선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회원사들이 모아준 돈으로 ‘신(神)의 직장’을 유지하고, ‘관치의 대리인’ 구실을 해 온 게 그간의 협회”라며 “회장 선출과 연임을 결정할 권한이 당국에서 회원사로 넘어가면 아무래도 회원사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협회장에 집중된 권한도 협회 이사들인 금융회사 대표들에게 분산되는 흐름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관료들은 다소 복잡한 표정이다. 당장 ‘자리’가 줄어드는 건 아쉽다는 분위기다. 다만 한 금융위 관료는 “그간 협회마다 ‘대선배’들이 자리잡고 있어 업무 협의를 할 때 다소 껄끄러운 면도 있었는데 이젠 그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 편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주주인 금융회사와 공기업의 CEO 인사는 협회와는 분위기가 또 다르다. 업무 속성이 정책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하지만 최근 관피아 퇴조를 틈타 이른바 ‘정피아(정치인+마피아)’가 빈 자리를 파고드는 현상이 뚜렷해 문제가 됐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감사 자리는 정치권의 ‘기득권’이 워낙 강해 현실적으로 진출을 원천봉쇄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다만 실제 경영을 맡는 기관장과 부사장 등은 가급적 전문성이 있는 인사들을 선임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태도가 분명해지면서 그간 지연됐던 금융공기업 인사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9개월간 사장이 비어 있던 주택금융공사 사장에는 김재천 현 부사장이 내정됐다. 대구 출신의 김 부사장은 한국은행 부총재보를 거쳐 2012년 주택금융공사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보증보험은 올 6월 임기가 끝난 김병기 사장 후임 선임을 위한 공모를 10일 끝내고 김옥찬 국민은행 전 부행장, 김희태 전 우리아비바생명 사장 등 6명의 후보를 면접 대상자로 추렸다.

 올 12월 임기가 만료되는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연임이 유력하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 행장을 중심으로 몇몇 내부 인사로 후보군이 짜여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우리은행의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큰 변수가 없다면 이 행장이 연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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