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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꿈나무] 무엇이 사춘기 소녀를 흔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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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에드바르트 뭉크의 ‘사춘기’.

그들의 세계는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가
실비 플로리앙 푸유 지음, 용경식 옮김
문학동네, 149쪽, 8000원

중학교 3학년인 열다섯 살 소녀 리자 튀로의 일상을 잔잔하게 전하는 소설이다. 소설에서 다루는 시간은 크리스마스를 낀 연말부터 이듬해 7월까지 채 1년이 안되지만, 리자의 생각이 깊어지는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변덕스럽고, 학교 바깥 세상과 앞날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그 또래의 내면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스스로 평범한 소녀라고 생각하는 리자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같은 학년 친구 베로니크와 함께 베리오츠카 부인의 집으로 무용을 배우러 다닌다. 이혼해서 떨어져 사는 아빠와 함께 영화관 가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지만, 아빠의 여자친구 마리 루와는 아무리 노력해도 친해지지 않는다. 예전에 아빠와 엄마가 함께 살던 시절, 부엌에서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 후로는 '아무도 내 집, 내 몸 속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다짐하곤 하는 친구다.

리자가 경험하는 소소한 사건 중에서 마음을 가장 거세게 흔들어대는 것은 역시 이성과의 만남이다. 상대는 베로니크의 오빠인 대학생 토마. 어른들이 집을 비운 사이 토마와 그의 남자친구 디디에, 두 여중생 등 '아이들' 네 명이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베로니크 집 초인종을 누르자 토마가 문을 열어주며 어떤 여자애라도 떨게 했을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리자는 사랑에 빠져 버린다. 독자들의 기대대로 리자는 토마와 첫 키스를 하게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 '판단력을 상실한' 리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매달리자 토마가 어른스럽게 "배가 고프다"는 핑계를 대고 사고를 모면한다. 말하자면 소설은 중.고등학생 관람 가인 것이다.

인생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성찰을 전하는 대목에서 소설은 빛난다. 성기에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친절하게 설명한다. "여러 종류의 세균들이 모여 있는 것, 그것이 곧 인생"이라고. 첫 키스 이후 오랜만에 토마와 단 둘이 있게 됐을 때 리자는 '오늘 온종일 내가 입맞춤을 고대하는 동안 토마 역시 그랬을 것이다. 이런 달뜬 기다림이 곧 인생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목에서 언급한 '부서지기 쉬운 그들의 세계'는 무엇을 겨냥한 것일까.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시라. 리자의 고등학교 1학년 생활을 그린 연작소설 '열여섯 더하기 하나'도 함께 출간됐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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