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마을' 양평에 서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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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양평에 살고 있는 민정기 화백이 소나기마을 상상도를 그려 보냈다. 누구나 마음 속에 그리던 풍광 그대로다.

경기도 양평에 조성 중인 '소나기마을'에 관심이 높다. 황순원(1915~2000) 선생의 단편소설 '소나기'의 배경을 재현한다는 발상 자체가 흥미롭다. 무엇보다 '소나기'를 학교에서 읽은 요즘의 뭇어른에게 소나기마을을 가꾼다는 소식은 은은한 향수도 불러일으킨다.

가만 눈감고 상상해보라. 소년과 소녀가 처음 만난 개울이 흐를 테고, 거기 아슬아슬하게 놓인 징검다리, 소나기 피해 숨은 오두막, 멀리 논바닥엔 허수아비 허허로이 서 있겠고…. 마을 전경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양평군(군수 한택수)에 따르면 사업 계획은 2년 전 수립됐다. 그리고 지난해 경희대(총장 김병묵)가 양평군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경희대는 황순원 선생이 57년부터 국문과 교수로 재직한 곳이다. 양평군은 서종면 수능리 일대 군유지 2만여 평(시가 80여 억원)을 소나기마을 부지로 정하고 1차 예산으로 14억원을 정했다.

지난달 선정한 용역 업체가 마을 설계도를 9월까지 완성하면, 2007년까지 약 100억원을 들여 마을을 세울 계획이다. 이런 취지에 동감해 본지가 소나기마을 조성을 포함한 황순원 문학제 관련 사업을 올해부터 공동 주최하기로 한 것이다.

한데 왜 하필 양평에 소나기마을이 설까. 이북 출신인 선생은 생전에 양평에 살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김종회(경희대 국문과).박덕규(단국대 문예창작과)교수 등 황 선생 제자 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양평읍'이 작품에 거론된다.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간다는 것이었다'는 문장이 그것. 여기서 '양평읍'이란 표현은 군 내의 한 마을에서 읍으로 옮긴다는 뜻이라는 풀이다. 또 소설 속 등장인물의 대사 대부분이 경기도 방언이며, 양평 용문사를 무대로 단편 '나무와 돌, 그리고'를 썼을 만큼 선생이 자주 양평을 들렀다는 주위의 증언도 있다. 선생이 '소나기'의 배경이 양평이라고 밝힌 바는 없지만 여러 정황상 양평이 가장 유력하다는 것이다.

소설 '소나기'는 허구다. 그러나 허구의 소설 무대를 실재로 재현하는 초유의 시도는 분명 의미있는 작업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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