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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전망의 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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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무슨 '뷰(view)'란 이름의 아파트가 부쩍 늘었다. 파크뷰, 리버뷰, 그린(골프장)뷰에 오션뷰까지. 아예 '뷰를 사랑한다'는 아파트 브랜드명까지 생겼다. 사람들이 그만큼 탁 트인 전망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시쳇말로 '전망=돈'인 시대다.

사실 그렇다. 마치 성냥갑을 모아 놓은 듯 오밀조밀 늘어선 아파트 단지에서 거실 커튼을 젖히면 앞 동 뒷면이 보이기 일쑤다. 그런데 이때 시원한 한강, 널찍한 공원, 파도 장단에 갈매기가 춤추는 바다가 보인다면…. 삶의 질이 뭐 별건가. 가슴 밑바닥까지 시원해지는데.

자연히 같은 아파트 단지라도 '조망권'에 따라 값 차이가 억대까지 난다. 하지만 전망의 가치를 계량화하기는 수월치 않다. 트인 전망이라도 질이 다르고, 지역마다 부동산 가격이 천차만별인데다 인간의 심리적 만족감 등을 숫자로 산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week&이 한번 따져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한강 바라보는 데 얼마' 프로젝트다.

실험 대상은 서울 강북의 40평짜리 두 아파트. 같은 단지여서 교육여건.교통.일조권 등 입지 조건은 동일하다. 단 A아파트는 강변을 끼고 있어 한강이 훤히 보이는 데 반해, B아파트는 A아파트 바로 뒤쪽에 위치해 빠끔히 보이는 부분 조망에 만족해야 한다. A아파트 9층의 현 시세는 10억원 정도. 반면 B아파트 18층은 9억200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더 멀리 보이는 18층이 9층에 비해 갖는 가격 프리미엄이 2000만원 선. 따라서 두 아파트 같은 층의 실질적 가격차는 1억원 정도다. "그 1억원의 차이는 오로지 한강 조망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이 지역 그린 부동산 조운례 사장의 진단이다.

week&은 두 아파트의 베란다 뒤쪽 5m 지점인 거실 중앙에서 한강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다. 2장의 사진을 한국감정원 부동산컨설팅사업단에 보내 한강 조망률 차이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다. 한국감정원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이용, 전체 사진상에서 한강 주변 면적이 얼마인가를 따져 한강 조망률을 계산했다. 최근 조망권 침해에 따른 소송이 빈번해지면서 생겨난 분석 틀로, 올 초 고등법원에서 인정받은 방법이다.

분석 결과 A아파트의 '한강 조망률(실선 부분)'은 16.8%, B아파트는 4.84%였다. A아파트의 한강 조망률을 100으로 봤을 때 B아파트는 28.8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결국 이 지역에서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파트에 비해 70% 정도 가리는 아파트의 경우 가격이 1억원가량 낮아진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한국감정원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한강 조망 정도가 10% 감소함에 따라 1420만원의 시가 하락이 발생한다."

조망 정도 10%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이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모든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도 없다. 그러나 강변 아파트들이 한강이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에 따라 대부분 엇비슷한 등락 폭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실험은 하나의 기준점을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분명 한강을 보는 데에도 일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시대다.


멤버십 루 회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W 서울 워커힐 호텔의 수영장. 한 눈에 들어오는 한강 야경이 감미롭다.

***'전망 = 돈' 보이는 만큼 비싸

조망률 10%, 20%까지 세세하게 따지진 않지만 이미 부동산 업계에선 나름대로 한강 조망권을 구분하고 있다. 아무것도 가린 것 없이 탁 트인 경우를 '풀(full)', 절반정도 볼 수 있으면 '하프(half)', 틈새로 조금 한강이 눈에 들어오면 '슬릿(slit)', 다른 건물에 둘러싸여 한강을 전혀 볼 수 없다면 '제로(zero)' 등 4단계로 나눈 것. 물론 각 단계에 따라 아파트값이 다르게 형성되어 있는 것도 현실이었다.

전망 따라 빈익빈 부익부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엔 이런 4단계 구분이 정확하게 적용된다.(그림 참조) 42평형 250여 가구가 한강을 얼마만큼 볼 수 있느냐에 따라 뚜렷한 가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 "전망 좋은 데 살아 좋겠네. 비싸겠는걸"이란 주변의 부러움이 모든 아파트에 해당되는 건 아니었다. 둔치 바로 뒤에 서 있는 A동 6~9층은 한강 조망권이 가장 좋은 지점. 시세 역시 가장 높아 대략 7억5000만원대를 유지했다. 반면 A동 뒤에 있는 B동은 '하프 뷰(view)'만 보장돼 6억원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단박에 1억5000만원의 차이가 났다.

양쪽으로 두 건물이 한강을 가리고 있는 C동은 틈새로만 한강을 볼 수 있어 5억5000만원 정도의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아예 강이 보이지 않는 D동의 저층 매물 경우엔 5억원대의 매물이 나와도 쉽게 팔리지 않는 형편. 한 단지 내 같은 평형에서도 한강이 얼마나 보이느냐에 따라 최고 2억5000만원까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 동네 부동산중개업소 정모 실장은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돈이 좀 더 들더라도 한강이 보이는 매물을 찾는다. 전망이 좋을수록 환금성도 그만큼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골프장 조망권'이 4억원

전망 프리미엄은 한강 주변에만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경기도 용인시 죽전동엔 최근 '골프장 조망권'이란 용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해 입주한 59평대의 한 아파트 가격이 주변 한성 골프장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무려 4억원 대의 가격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 부동산 전문사이트 '부동산 114'에 이 아파트 로열층인 25층은 14억원대로 매물이 나온 반면 15층 이하 아파트는 10억원을 넘기 어려운 실정. 이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푸른 잔디를 보는 대가로 강남 집값에 버금가는 비용을 낸 격"이라고 분석했다.

새로 아파트를 짓는 건축업체로선 주변 전망이 어떠한지도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서울 운현궁 주변 한 아파트의 경우 북악산 쪽 조망이 되는 130여 가구는 90% 이상 분양이 된 반면 나머지 250여 가구는 좀체 거래가 되지 않고 있다.

부동산업계에선 전망에 대한 경제적 가치가 처음으로 논의된 시기를 10년 전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넥스플래닝 길연진 대표는 "1995년 명륜동 아남아파트를 분양하면서 조합원들 사이에 '똑같은 돈을 내면서 누군 전망 좋은 집에 살고 누군 나쁜 집에 산다'며 불만이 생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감정원이 조망권에 따라 다른 분양가격을 산출했고, 이때부터 전망에 대한 수치화 작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문가 자리라도 전망 좋으면 상석

조망권이 아파트 가격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W 서울 워커힐 호텔의 피트니스 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멤버십 루'는 분양가만 6000만원에 이르고 있다. 호텔 멤버십 중 최고가. 다른 호텔 피트니스 시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이토록 고가인 이유는 이 지역이 마운틴뷰와 리버뷰를 모두 충족시키는 배산임수의 전형이기 때문. 이혁진 대리는 "서울 시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좋은 자연 경관 때문에 초고가 회원권임에도 지난해 10월 1차 분양이 한 달 만에 마감됐다"고 말했다.

프라자 호텔은 지난해 5월 서울광장 조성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외국에서 혼자 온 손님이라도 싱글룸보단 4만 원의 추가 비용을 내고서도 서울 광장이 보이는 딜럭스룸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 또한 레스토랑에서도 은밀한 별실보다 오히려 서울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끌벅적한 홀이 더 인기가 높다고 한다. 원선아 대리는 "최근엔 안쪽이 아닌 서울 광장을 볼 수 있는 문가 쪽이 상석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글=최민우·남궁욱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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