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미래부와 국회의 수상한 답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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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바야흐로 입시의 계절, 5600만 휴대전화 가입자가 풀어야 할 논술 문제를 한번 내볼까 한다. “통신비를 인하하려면 어떤 정책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논하시오.” 이건 대통령 공약사항인 만큼 만점 답안을 제출한 학생은 합격은 물론 대통령 표창도 받을 수 있다. 의욕에 찬 국회와 정부가 서둘러 답을 내놨다. 소위 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법안을 발의한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은 통신비 인하엔 “보조금 상한제 3년간 한시적 실시”가 최고라고 답했고, 미래부 차관은 “연간 가구당 50만~60만원 절감 효과가 있다”고 엄호했다. 지난 4월 30일 국회 상임위는 132개 법안 속에 묻어 입법 처리했다.

 이달 초 시행된 단통법의 결과는? 시장 반란이었다. 소비자는 신규 가입을 전면 중단했고, 중국산 저가폰으로 몰려 갔다. 이런 예상치 않은 선물을 주다니 중국 업체는 국회와 미래부 공무원의 활약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막대한 추가 수익이 예상되는 이통사의 주가는 20% 이상 뛰었다. 정부 논리는 이랬다. 단말기 보조금을 30만원 이하로 묶으면 제조업체가 가격 인하를 단행하고 소비자 할부금이 낮아져 자연스레 통신비 인하가 이뤄진다는 것. 대통령 공약사항을 제조업체에 전가한 답안이었다. 불똥이 제조업체로 튀었다. 가격이 세계 최고로 비싸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세계 시장에서 악전고투 중인 휴대전화 업체가 반박 자료를 내놨다. 고급폰 가격은 미국이 528달러로 제일 비싸고, 한국은 441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6위 수준이라는 것. 제조업체와 이통사가 지급하는 보조금 때문에 그렇다. 국내산이 비싸다면 가격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튼 국회의 답은 몇 점일까? 낙제, 불합격이다. 아니 불온하기까지 하다.

 통신비 인하에는 우선 23년간 묶은 ‘요금인가제도’ 혁파를 논해야 만점을 받을 수 있다. 요즘 각광을 받는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J. Rifkin)의 말대로 정보통신 인프라는 모든 국민이 사용하는 공공재다. 국민 혈세로 정보통신망을 구축했다. 모든 사용자가 프로슈머(prosumer)가 되는 생산수단이다. 문제는 이 국민 자산을 독점한 이동통신 3사가 가격정찰제를 활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는 점이다. 통신비 부담의 원천은 이거다. 비싼 옵션인 ‘데이터량 무제한’을 택해도 ‘추가 요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통사의 경고가 뜬다.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사는 한국인들은 ‘추가 요금’ 경고에 면역된 지 오래다. 통장에서 얼마가 더 빠져나갔는지 네티즌은 모른다. 데이터 사용량 최고인 한국인들은 살짝 털이 뽑히는 걸 모르는 거위, 이통사는 공공재로 축재하는 거위털 집하장이다. 세금이 따로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 왜 통신비 부담의 주범으로 제조업체가 지목되었을까? 보조금 지출을 줄이면 요금 인하를 단행할 여지가 생긴다는 이통사의 호소에 미래부 관계자들이 설득당했을 개연성이 높다. 아니면 ‘요금인가제도’라는 규제권한을 미래부와 방통위 통(通)피아들이 놓고 싶지 않다. 보조금 삭감을 단행해 단말기 가격 인하를 압박하자! 이통사와 미래부, 방통위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담합했다. 통피아의 ‘보이지 않는 손’이 시효가 만료된 요금인가제도는 버려둔 채 제조업체로 화살을 날린 배경이다.

 전에는 단말기 유형에 따라 제조업체 15만원, 이통사 30만~50만원 정도의 보조금을 소비자에게 지원했다. 단통법이 발효된 지금은 이통사 지원금이 15만원으로 낮아져 고급폰 구입에 소비자는 오히려 40만~50만원 정도를 더 내야 한다. 통신비 급증이다. 담합의 결과 얻어진 이 엄청난 수익을 요금 인하로 연결했다면 좋으련만 이통사와 통피아의 커넥션은 엉뚱한 곳을 쑤셔놨고, 국회는 들러리를 섰다. 결과는 명료했다. 국내폰 매출은 전멸, 유통업체는 폐업, 소비자는 가입 중단. 불온한 답안이 낳은 시장 혼란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통신비 인하는 첨단 창조경제를 꽃피우는 뇌관이다. 젊은 세대가 사이버 세계를 자유로이 유영하고 상상력 지평을 무한정 넓혀주는 출입문이다. 이 출입문 문턱을 낮추는 시대적 과제에 국회와 정부의 답은 고작 보조금 상한선제다. 국민혈세로 깔아놓은 정보망을 싼값으로 쓸 국민 권리는 갈무리해두고 말이다. 옥중 최태원 회장이 ‘사회적 기업’을 힘줘 말했을 때 공공재로 돈 벌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 깔린 정보망을 한껏 활용할 소비자 주권을 보장해야 사회적 기업이다. 고급폰 가격 인하 노력은 꼭 필요한데, 창조경제·미래세대를 위한 답안은 어디로 갔을까? 통피아는 미래세대의 거위털을 계속 뽑고 싶다. ‘미래창조과학’이란 근사한 이름으로 소비자 주권을 외면하고 창조경제의 주역들을 속이는 법, 정말 수상하고 불온하지 않은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