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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김우중' 논란] 외국인이 전경련 회장 했던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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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우중 전 회장이 18년간 한국 국적이 상실된 프랑스인 신분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국적법은 이중국적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만 18세 이전의 미성년자에 한해 한시적으로 이중국적을 인정하고 있다. 김 전 회장으로선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 이중국적자로 행세해 왔다. 김 전 회장은 2003년 1월 30일 프랑스에서 사회보장번호도 발급받았다.

김 전 회장은 프랑스 국적 취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자격을 잃게 되고 투표권, 공무담임권, 사회보장 혜택 등을 모두 상실하는 게 원칙이다. 김 전 회장 측은 "김 전 회장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면 자동으로 한국 국적이 없어지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한국국적 회복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 한국인 자격 상실=김 전 회장의 프랑스 국적 취득 사실은 본지가 2002년 12월 27일 "프랑스 인터폴이 2001년 11월 '김우중씨가 1987년 4월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는 내용을 경찰청에 통보해 왔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경찰청은 당시 김 전 회장에 대해 181개 인터폴 회원국에 수배하고 각국에 그의 소재 및 출입국 관련 정보를 알려 달라고 요청했었다.

프랑스의 일간지 리베라시옹도 2003년 3월 "김 전 회장이 87년 당시 부인 정희자씨 및 두 아들과 함께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 전 회장은 "87년 당시 한국과 수교관계가 없는 동구권 시장을 개척하는데 필요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고 검찰에서 밝혔다.

김 전 회장은 그동안 프랑스 국적과 한국 국적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이중국적자로 외부에 알려져 있었다.

김 전 회장이 이중국적자로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은 현행 국적법상 외국 국적을 취득할 때 신고 의무가 있지만 그 기한이나 처벌 조항이 없는 등 제도상의 허점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외국 국적을 취득한 당사자가 법무부에 신고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알 길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터폴 수배까지 의뢰한 정부가 김 전 회장의 한국 국적 상실을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 은닉 재산 추징은 어려울 듯=은닉 재산과 관련, 김 전 회장이 프랑스에 재산을 숨겨 놓았을 경우 환수할 수 있는지가 관심거리다. 프랑스가 자국민 보호 원칙에 따라 김 전 회장 재산에 대한 정보 제공을 거부할 수 있어 재산 환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범죄로 얻은 이익에 대해 법원이 추징을 선고할 경우 프랑스 정부에 추징을 요청해야 한다.

김병석 변호사는 "자국민 보호에 충실한 프랑스 정부가 추징.강제집행에 대한 협조뿐만 아니라 김우중씨 것으로 추정되는 은닉 재산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 외국인이라도 처벌 가능=김 전 회장은 외국인으로서 전경련 회장(98년 9월~99년 10월), 대한축구협회장(88년 1월~92년 9월) 등 왕성하게 사회.경제적 활동을 해왔다.

노동법상 외국인은 취업 및 체류뿐만 아니라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 혜택에 제약을 받는다. 그런데도 김 전 회장은 한국 여권을 갖고 자유롭게 출입국했으며, 도피생활 중에는 프랑스인이어서 우리 사법당국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경련 규정에 따르면 회장은 회원 중에서 선출하며 회원은 국내외 산업 및 이와 관련 있는 법인이나 개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더라도 전경련 회장이 되는데 제한은 없다. 61년 창설된 전경련 회장을 외국인이 맡은 전례는 없다.

반면 대한체육회 규정은 '산하 단체의 고위 직책, 즉 회장을 비롯한 부회장 등 임원은 외국인이 맡을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김 전 회장이 대한축구협회장을 지낸 것은 대한체육회 규정을 어긴 셈이다.

이에 따라 김 전 회장은 외국인 신분으로 사법처리를 받게 됐다. 정상진 변호사는 "우리 형법이 속지주의(屬地主義.자국 내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법 적용)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김 전 회장에 대한 처벌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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