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시골 떠나 서울서 한달 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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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로 이사 온지 한달 반이 지났다. 이사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을 때 국민학교 3학년 짜리 큰 아이는 다정한 친구들과 헤어질 일이 가장 섭섭하고 걱정이 되는지 이따금『엄마, 나는 이사가는 것이 싫어요. 그냥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해서 아빠와 내 마음을 쓰리게 했다.
『서울에 가서 더 좋은 친구들을 다시 사귀면 돼. 아마 네게 친절하고 좋은 친구가 많이 생기게 될 거야』하며 아이의 그 아픈 마음을 달래주려 노력했으나 과연 10분의l이라도 위로가 됐었을까.
정든 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를 결심한 터이니 온 가족의 마음은 아이나 진배없이 허전하고 씁쓸한 것이었다.
칠순을 바라보시는 시아버님은 맏아들인 우리들의 간절한 바람을 완강히 거절 하셨다.
『나는 죽어서도 고향에서 살겠다. 네 에미가 묻힌 이곳을 버리고 떠날 순 없어. 더우기 서울이란 곳은 내가 살 곳이 못돼』하시며 우리들의 이삿짐을 눈물로 떠나보내시고 세째 아들집에 주저 앉으셨다.
야단치는 엄마·아빠 몰래 할아버지 용돈을 축내기 일쑤였던 어린 손자들의 재롱이 참을 수 없이 보고 싶으실 때면 훌쩍 서울에 올라오시곤 하는 아버님은 하룻밤을 주무시기가 무섭게 서둘러 내려가시고 만다.
생각만 있으시면 아무리 먼 곳의 친구라도 자전거를 타고 가 만나 텁텁한 막걸리 잔을 나눌 수 있는 고향을 어찌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친구가 없는 아이들은 밖에 나가질 못하고 마루와 방 사이를 개미 쳇 바퀴 돌듯 뱅뱅 돌며 답답해한다. 따뜻한 햇살이 흠뻑 비치는 동네 뒷마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구슬치기·딱지치기·공차기를 하며 날 저무는 줄 모르고 놀다가 야단을 맞곤 하던 아이들이 너도나도 항상 문을 꼭 잠그고 사는 연립아파트에서 친구도 없이 갇혀 노는 걸 보자니 내 마음도 답답해지고 자꾸 눈자위가 붉어오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큰아이가 고향엘 가겠다고 몹시 조르기에 보냈더니 며칠이 못 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엄마, 나 다시는 고향에 가지 않을 거야』 하며 눈물이 글썽해지는 것이 아닌가. 옆집에 살던 배꼽친구를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던 아이가 웬일인가 해서 물어보았더니 다른 아이들과 노느라고 별로 반가와 하지도 않더라는 것이었다. 친구를 잃은 슬픔에 아이는 한동안 밥맛마저 잃은 듯 했다.
여러 가구가 함께 붙어사는 아파트지만 아직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내는 엄마들이 수두룩 하다. 얼굴 마주칠 기회가 없는 것이다. 김장철이면 서로 거들어 주고 속 쌈을 나누어 먹으며, 이집 저집 아이들을 찾으러 다니고, 울고 있는 동네아이를 업어 달래주던 고향집이 갈수록 그립기만 하다. 고향의 그 정겹던 이웃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겠지. <서울 은평구 갈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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