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가족은 다툴 수 있지만 화해하고 다시 하나 될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가족은 때때로 다툴 수 있지만 언제든 화해하고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 한국 방문 이후에 그렇게 되도록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한 말이다. 지난 8월 청와대에서 만난 데 이어 두 달만인 이날 로마 바티칸 교황청의 바오로 6세홀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한반도 평화 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제평화와 화해를 위한 교황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사드린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 교황께서 관심을 갖고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박 대통령이 그러면서 “통일된 한국에서 교황님을 다시 뵙기 바란다”고 하자 교황은 “동북아 평화와 화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며 훗날을 기약했다.

두 사람은 에볼라 바이러스와 기후 변화, 빈곤 문제 등 여러 가지 국제 상황에 대한 대화도 나눴다. 교황은 “창조물을 지키는 것이 인간이 할 일이다. 하느님은 항상 용서하신다”며 “그러나 인간인 우리는 가끔만 용서한다. 자연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그런 뒤 “음식을 낭비하지 않으면 모두가 먹고 살 수 있다”며 절제를 강조했다.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참석과 이탈리아 순방을 마치고 지난 18일 귀국한 박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관한 지지를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 달만에 만난 교황으로부터 변함 없는 남북 화해에 대한 지지를 확보했고, 중국의 2인자인 리커창(李克强) 총리에게도 공개적인 지지 발언을 이끌어냈다. 리 총리는 ASEM 회의가 열리던 지난 16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박 대통령과 만나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통일을 지지하며 이를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며 “남북 접촉은 적극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지지한다”는 발언도 덧붙였다.

지난 4일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등 북한 실세 3인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전격 참석하며 화해 무드로 옮겨가려던 남북관계는 지난 16일 북한이 남북 군사당국자 간 접촉에서 오간 발언과 접촉 과정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면서 다시 안갯속 상황에 빠진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중국 지도부가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에 손을 들어주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박 대통령이 ASEM에도 성공적으로 데뷔하면서 유엔(UN) 총회,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등 글로벌 다자외교 무대에서 우리 정부의 통일정책에 관한 지지를 모두 이끌어냈다는 성과도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ASEM 이틀째 자유토론에서 “우리는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며 평화통일 기반의 구축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노력에 ASEM 회원국들이 힘을 보태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19일 순방 성과 브리핑에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지지를 확대했다”며 “북핵 불용원칙 및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일치된 입장을 재확인하고,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 구축 의지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순방을 통해 창조경제의 지평을 유럽까지 확대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무엇보다 순방에서의 성과는 이탈리아·덴마크·프랑스 등 유럽 정상들이 양자회담 당시 창조경제라는 단어를 그대로 인용할 정도로 많이 보급됐다는 점”이라며 “창조경제의 공감대가 형성돼서 창조경제와 관련된 여러가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과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과의 지난 17일 정상회담 때는 이탈리아가 전통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 패션·섬유·디자인 분야에서 창조경제 파트너십을 강화키로 합의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