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상황이 만드는 생각의 패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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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호 29면

우리의 뇌는 이익 상황과 손실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또한 동일한 확률적 변화에도 상황에 따라 주관적인 가중치를 부여한다. 이렇게 우리의 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손익 상황(이익 및 손실)과 확률 상황(고확률 및 저확률)을 교차하면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상황이 나온다. 괄호 안은 상황별로 작동하는 생각의 패턴이다.

A. 고확률의 이익 상황(위험 회피)
B. 고확률의 손실 상황(위험 감수)
C. 저확률의 이익 상황(위험 추구)
D. 저확률의 손실 상황(위험 제거)

우리의 뇌는 이익은 지키고 손실은 회피하고 싶어 한다. 특히 거의 확실한 이익 실현이 기대되는 상황(A)에서 우리의 뇌는 안전을 추구하며, 추가적 이익 확보를 위해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1억원을 얻을 확률 95% 상황에서는 추가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욕심을 부리기보다 높은 확률의 이익을 안전하게 실현하기 위해 위험을 적극 회피한다. 따라서 이익 실현을 위협할 수 있는 유혹을 쉽게 물리치며 다른 선택 대안에 대해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반대로 거의 확실하게 손실이 발생되는 상황(B)이라면 우리의 뇌는 어떻게 해서든 손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을 찾는데, 이를 위해 언제든지 모험을 감행할 준비가 돼 있다. 예를 들어 수중에 있는 1억원을 내놓아야 하는 확률이 95%인 상황에서는 이 손실만 피할 수 있다면 더 큰 위험부담을 감수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싶다. 도박으로 큰돈을 탕진한 사람들이 더 많은 빚을 내서 이전의 손실까지 한꺼번에 만회하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익 상황이라도 그 발생 확률이 사소할 정도로 낮은 상황(C)이라면 우리의 뇌는 확실한 이익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한다. 아무리 이익 상황이라도 실현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면 모험을 감행한다고 해서 더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억원을 얻을 확률이 5%에 불과한 상황에서는 뭔가 과감한 시도를 하지 않으면 1억원이라는 이익 실현을 기대할 수 없다. 당첨 확률이 현저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로또를 구입하는 소박한 위험 추구자들도 이 영역에 존재한다. 이들은 객관적인 발생 확률보다 더 높은 기대감을 부여하기 때문에 객관적 기대값보다 더 높은 비용을 주고도 기꺼이 로또를 구입한다.

반대로 손실 발생이 현저히 낮은 상황(D)에서 우리의 뇌는 굳이 더 높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모험을 추구하기보다는 손실 자체를 확실히 제거하려 한다. 예를 들어 1억원을 잃을 확률이 5%에 불과할지라도 주관적으로 느끼는 불안은 5%보다 크기 때문에 위험 회피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현저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 구매를 꺼리거나, 희귀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현저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납부 금액이 휠씬 높은 다보장 보험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에게 가장 주의 깊은 판단이 필요한 상황은 높은 확률의 손실에 직면하는 때다. 일반적으로 이 상황에 처하게 되면 우리의 뇌는 곧바로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오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방향으로만 작동한다. 그러다 손실이 더욱 커지기도 하며, 이를 해결하고자 거짓으로 둘러대다 더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우리의 뇌는 손실 상황이 야기하는 긴장과 공포에서 재빠르게 벗어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공포감, 그 자체가 아니라 공포에 대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에 빠진 뇌는 위험하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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