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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환 칼럼] 장벽은 두드려야 무너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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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호 30면

해마다 이맘때면 독일은 분주해진다. 현대사의 숨가빴던 굵직굵직한 기념일들이 징검다리처럼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일은 독일 통일 24주년이었으며 9일은 베를린 장벽 붕괴를 이끌어낸 라이프치히 월요집회 시작일, 그리고 다음 달 9일은 장벽 붕괴의 날이다. 특히 올해는 동서 냉전 종식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 붕괴 사반세기가 되는 해여서 더욱 뜻깊다.

25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0월 9일 라이프치히엔 7만 명이 넘는 ‘용기 있는 동독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SED(사회주의통일당) 정권을 향해 “우리가 국민이다”를 외쳤다. 아직까지 서슬 퍼런 동독 군과 40만 명에 달하는 주동독 소련군이 건재하던 때였다. 민주화를 촉구하는 시위 도중 체포돼 투옥되거나 진압군의 발포로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쓴 항거였다. 혹자는 이를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된 ‘바스티유 습격 사건’에 비유하고 있다.

이어진 동베를린에서의 민주화 시위에는 100만 명이 넘게 참가했으면 급기야 11월 9일은 장벽이 붕괴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정권 몰락의 단초가 된 장벽 붕괴는 이듬해 10월 3일 독일통일로 결실을 맺었다.

통일 24주년을 맞는 지금의 독일은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도 독야청청하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 대한 ‘퍼주기’ 지원을 우려할 정도가 됐다. 통일 이후의 통합과정에서 나타난 온갖 정치·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도 모범적인 국가로 우뚝 선 것이다.

물론 여전히 동서 간의 격차는 남아 있다. 옛 동독 지역의 국민소득은 서쪽의 70% 수준에 그친다. 실업률은 두 배나 된다. 생산성도 여전히 서독 지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등 북부의 인구 감소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미래의 경제성장 동력에 대한 희망을 걸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통일의 성과는 기대를 월등히 뛰어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과 사반세기 만에 기적을 이뤘다 할 수 있다. 라이프치히·드레스덴·예나·츠비카우 같은 동독 중남부 작센·튀링겐주의 도시들은 서독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성장이 눈부시다. 통일 수도가 된 베를린의 동부지역도 활기가 넘친다. 예술·엔지니어·컨설턴트 분야의 발전이 두드러져 전 세계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곳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남북한 통일의 꿈을 가진 우리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한반도엔 여전히 냉전의 기운이 차다. 미사일이 날아들고 서해엔 포성이 들린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찾아오기 벅차겠지만, 통일이 대박이 되기 위해선 철두철미한 준비가 필요하다. 25년 전 독일과 지금의 한반도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우리는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낸 전쟁을 치렀고 한쪽에선 핵무기를 개발 중이다. 남북한의 경제력도 동서독에 뒤진다. 막연하고 어설픈 통일을 기다렸다가는 지금 통일독일이 누리는 번영은 고사하고 ‘쪽박’을 찰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인적 교류가 시급하다. 따지고 보면 베를린장벽 붕괴는 장벽을 사이에 두고도 동·서독인들이 반대 진영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왕래의 힘이 컸다고 할 수 있다. 87년 서독인은 동독에 600만, 동독인은 서독에 500만 명이 다녀갔다.

개성공단을 확대하든, 다른 공단을 신설하든, 금강산·개성 관광을 재개하든, 지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본 것과 같이 남북 스포츠 교류를 활성화하든, 사람들이 휴전선을 남북으로 드나들어야 한다. 때마침 지난4일 갑작스럽게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용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이 인천을 다녀갔다. 제2차 고위급 회담도 곧 열릴 예정이다. 이러한 모멘텀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베를린장벽은 결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두드리고 또 두드려야 한다.

한경환 외교·안보 에디터 helmu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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