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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공기업 사장, 임명제로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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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부 고위직이나 산하 공기업 사장 자리 등이 빌 때마다 번쩍 손을 들고 나서는 사람은 언제나 많다. 자리에 따라 고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런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른바 '공모(公募)꾼'이 횡행하는 것도 그런저런 사연이 있어서다.

하다못해 행정자치부 인사국장을 공모할 때 어느 정육점 주인이 자기추천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이게 무슨 코미디냐 하겠지만 그가 적어 낸 공무원 인사정책과 행정에 관한 소신은 고교생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런 류의 서류 접수 자체가 부끄러웠던지 뒷소문도 나지 않았다. 법무부 교정연수부장 공모 때도 어떤 방범대원이 서류를 갖춰 냈다. 정부의 주요 직책에서 일할 사람의 현 직업이 무엇인지 따지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불행하게도 이상의 두 인물은 적재적소라는 판단 기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 같은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부처 간 칸막이 문화를 철폐하기 위해 실시해 온 공직 내 또는 외부에서의 직위공모제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참여정부는 평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비슷한 철학을 가지고 출발한 공기업 사장 공모제도는 적잖은 시련을 겪고 있다. 상식적으로 봐서 턱도 없는 인물들이 정부 투자기업과 출자기업을 찾아다니며 자기추천서를 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해당 공기업은 적임자를 찾지 못해 줄줄이 몇 달째 자리를 비워 두고 1, 2, 3차 공모까지 나가는가 하면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벌써 4차로 이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인천공항의 인물 공황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예견돼 온 터였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참여정부가 소리 높여 외쳐온 투명성의 원칙에 있다. 지난해에 시행된 정부 산하기관 관리기본법에 따라 공기업의 기관장은 공개적이고 투명한 경쟁절차를 거쳐 정부가 임명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민간전문가들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각 공기업의 기관장추천위원회는 늘 어정쩡한 모습이다. 사장이 되겠다고 나선 인물의 능력보다는 재산 형성 및 도덕성에 관한 절차를 따지는 데 세월을 보낸다. 그게 투명성의 원칙을 지키는 길인 것처럼 여겨진다. 위원회는 후보에 대한 구체적 조사권한도 없으니 서둘러 오케이 사인도 보내지 못한다.

인재 발굴과 활용에는 정책의 효율도 있어야 하고 품위와 존경도 뒤따라야 한다. 각 기관장추천위원회 위원들이 서로 책임을 떠밀거나 시민단체 눈치나 계속 살핀다면 정말 우스운 꼴이 되고 만다. 국민의 지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그 지탄은 결국 정부로 돌아간다. 정부의 책임 회피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기관장추천위원회의 비효율적 운영을 방치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공기업 임원에 대한 정부의 인사권 간여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의 임명에서부터 각부 장관의 추천 및 지명, 임명, 승인, 협의 등이 있다. 공기업 사장 후보들에 대한 인사자료와 구체적 조사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부가 차라리 인사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기관장 등의 경우 거의 청와대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공지의 사실이므로 투명과 자율, 능률을 위해 하부에 위임했던 인사권을 대통령이 행사하면 오히려 그게 더 투명한 일이다. 대통령 임명시 정치바람이 심하게 불면 그는 국민과 국회의 견제를 받게 된다. 공기업 기능은 정부 기능의 연장이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은 아직도 언론의 사각지대에 숨어 있지 않은가.

최철주 월간NEXT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