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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정부 못난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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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잘생긴 사람은 잘난 사람이고, 못 배우고 못생긴 사람은 못난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할 일 잘하는 사람이 잘난 사람이고, 자기 할 일 못하는 사람은 못난 사람입니다.

정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못 배우고 못생긴 사람이 이끌어가는 정부라도 일만 잘하면 잘난 정부입니다. 서울대 아니라 하버드대를 나오고, 욘사마 뺨치는 사람이 대통령을 하더라도 일 못하면 못난 정부입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하는 일이란 게 무엇일까요. 선택입니다. 무엇을 위한 선택일까요. 국민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선택을 잘해 국민 살림살이가 나아진다면 일 잘하는 잘난 정부가 되는 것이고, 선택을 엉터리로 해서 국민 몸 고생, 마음 고생시킨다면 못난 정부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선택이란 것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값을 잡겠다고 은행 대출한도를 줄이거나 금리를 올리면 당장 서민들 가계에 주름이 갈 수 있겠지요.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경기가 더욱 가라앉을 수도 있고요. 그렇다고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르는 부동산 거품을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정부가 하는 선택이란 것이 대개 이런 식일 겁니다. 수능시험 문제 풀 듯이 콕콕 정답을 찍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거지요. 결국 선택에는 가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국민 살림살이가 영향을 받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불행히도 못난 정부들이 몰려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가 라틴 아메리카였습니다. 정부의 잘못된 선택 탓에 국민 살림이 거덜난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문제에 천착한 중남미 학자 가운데 한 명이 아르헨티나의 정치학자인 마리아노 그론도나입니다.

그는 중남미 못난 정부들이 보여주는 행태의 공통점을 학문적으로 파고든 끝에 문화적 가치관의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20가지 항목에 걸쳐 잘난 정부와 못난 정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중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잘난 정부는 부(富)를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what does not yet exist)'으로 보는 반면 못난 정부는 '이미 존재하는 것(what exists)'으로 봅니다. 그래서 잘난 정부는 부의 원천이 혁신 과정에 있다고 보고, 미래의 파이를 더 키우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만 못난 정부는 지금 있는 파이를 나누는 데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잘난 정부는 모든 분야에서 경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반면 못난 정부는 경쟁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래서 질투와 유토피아적 평등을 합법화하고, 경쟁보다는 유대와 충성, 협동을 강조합니다.

잘난 정부는 미래 세대의 이익도 감안하는 분배의 정의를 추구하지만 못난 정부는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만 분배의 정의를 집중합니다. 잘난 정부는 비록 작더라도 오늘의 성취에서 보람을 느끼지만 못난 정부는 거창한 프로젝트를 좋아합니다.

잘난 정부는 개인의 근면과 창의성을 경제 발전의 주된 동력으로 보는 데 비해 못난 정부는 개인보다는 국민과 대중을 강조합니다. 잘난 정부는 프랑스 사상가 레이몽 아롱이 말한 '합리적 이기주의'라는 중간 수준의 도덕성을 지향하지만 못난 정부는 이타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고창(高唱)합니다.

대통령이 대학을 못 나왔다고 못난 정부가 아닙니다. 집권 3년차를 맞은 '참여 정부'는 잘난 정부일까요, 못난 정부일까요.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배명복 국제문제담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