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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볼라 … "미, 유행병처럼 공포 번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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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에볼라 감염으로 사망한 에릭 덩컨과 접촉해 감염된 간호사 앰버 빈슨(왼쪽에서 둘째)이 15일(현지시간) 댈러스 공항에서 애틀랜타행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다. [댈러스 로이터=뉴스1]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민주당 선거 지원 유세를 전격 취소하고 에볼라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TV로 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그는 “미국 본토에서 에볼라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에볼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지 언론엔 에볼라(ebola)와 공포(fear)를 조합한 ‘피어볼라(fearbola)’라는 말이 등장했다.

 CNN은 이날 “피어볼라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볼라 사망자가 발생한 텍사스주 댈러스에선 사재기 때문에 살균제가 동이 났다. 뉴욕 JFK공항엔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바지와 셔츠 소매를 테이프로 붙이고 일하는 청소원이 등장했다. 지금 미국인 10명 중 4명(43%)은 자신이나 가족이 에볼라에 걸릴까 걱정하고 있다(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 조사).

 피어볼라의 핵심은 미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다. 대통령까지 나섰지만, 자고 일어나면 정부 발표와는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에볼라 감염자와 접촉한 인원은 늘어만 간다. 에볼라 사망자를 치료했던 간호사 앰버 빈슨이 감염자로 밝혀지기 전 비행기 여행을 다녀온 것이 단적인 사례다. 빈슨과 같은 비행기에 탔던 승객 132명은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던 미국에서 의료진이 잇따라 에볼라에 감염된 것도 충격적이다.

 피어볼라의 원인은 자만과 방심이었다. 지난 8월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에 걸린 켄트 브랜틀리 박사 등 2명을 데려와 완치시킨 후 미국 보건 당국은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이는 초기 대응 실패로 돌아왔다.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간과했다. 미국에서 생화학적 격리시설을 갖춘 ‘수퍼 병원’은 애틀랜타 에머리 대학병원 등 4곳뿐이고, 최대 수용 인원은 13명에 불과하다. 미국 에볼라 컨트롤타워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일선 병원들을 위한 에볼라 대처 매뉴얼을 만들어 전파하는 것을 소홀히 했다.

 미국은 이제 두 곳에서 ‘특별 학습’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와 민간 의료구호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MSF)다. CDC는 최근 나이지리아의 에볼라 퇴치 성공 비결을 배우기 위해 연구인력을 급파했다.

지난 7월 말 첫 에볼라 환자가 발생했던 나이지리아는 8월 말 이후 신규 감염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비결은 신속한 총력 대응이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첫 환자가 발생하자 즉각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2차 접촉자 894명을 중점 감시했다. 전문인력이 이들을 방문한 횟수만 1만8500번이었다. 지역 공무원들은 접촉자 주변의 2만6000여 가구를 일일이 방문해 이상 여부를 확인했다. MSF에선 의료진 보호 가이드라인을 배워 왔다. 온몸을 빈틈없이 감싸는 것은 기본이고, 방역복을 입고 벗을 때는 절차를 지키는지 반드시 다른 의료진이 입회해서 감독한다.

 미국 정부는 에볼라 격퇴를 위해서도 우방에 손을 벌리는 처지가 됐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지난 13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에볼라 문제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정부는 의료진 파견까지 포함해 신중하게 검토 중이다. 이제 한국도 에볼라와 무관치 않은 상황으로 접어들게 됐다. 미국의 피어볼라 사태가 한국에서 되풀이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가 필요한 때다.

뉴욕·워싱턴=이상렬·채병건 특파원 서울=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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