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 박연심씨|"벽걸이 하나도 그냥 걸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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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사회 기능이 점차 다양화돼 주 생활권의 확대가 이루어짐에 따라 건축공간에 대한 재인식이 조성되고 있다.「보다 안락하게」「보다 기능적으로」「보다 아름답게」라는 기본의지로 형성되는 공간구성은「창조하는 공간」이라는 예술적 차원에서 바로 건축가의 역할이 부여되는 것이다.
여류건축가 박연심씨(32). 고시만큼이나 어렵다는「1급 건축사」자격증까지 취득했고 현장에서의 실무경험만 7년이 넘는 인정받는 건축가다.
『주생활은 막연히 살아가는 물리적인 얘기만은 아닙니다.「살기 편한 집」에서 모든 생활이 시작되듯 자신에 맞는 환경이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벽걸이 하나라도 평범하게 벽엔 걸지 않겠다는 모험이 물론 뒷받침되어야 하겠죠.』
박씨가 본격적으로 건축가로서 현장에 임한 것은 74년 홍익대 건축과를 졸업, 외환은행 본점 신축설계에 참여한 것이 처음이었다.
『패기만만하고 의욕도 많던 시기였어요. 처음 대학을 졸업하고 맡은 첫 번째 일이기도 했지만「여자이기 때문에 라는 구실에 지기 싫어서 밤을 꼬박꼬박 새우는 철야작업에도 지칠 줄 모르고 일에 매달렸습니다. 덕분에 많이 컸지요. 건축화 과정에서 실제 적용의 단계와 자기 나름의 건축표출이 얼마나 어긋난다는 것도 경험했고요. 그때 일의 여유도 배웠습니다.』
박씨가 그 동안 참여한 작업은 여의도 KBS별관(구 TBC스튜디오) 사옥신축설계, 서울대 공과대학 설계, 서울 한남동 연립주택 설계 등이다.
하나의 작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소유주의 요구에 대한 현황파악→분석 및 총괄적 검토→건축의 기본구조 디자인→도면작성(난방·음향·전기 등 포함)→건축허가취득→시공→완공 등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특히 박씨에게 관심 있는 건축분야는 집단 주거 생활공간으로 아파트나 연립주택에 집중되고 있다. 이는 아무래도 박씨 스스로가 직접 사용하고 있는 주부의 입장에서 조리대의 높이 하나라도 이론과 실제적용의 친밀감이 공간의 씀씀이나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잇점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0여명의 여성건축가가 현장에 참여하고 있으나 실제 건축사 자격증 소지자는 박씨를 포함, 3명에 불과하다.
「1급 건축사」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선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현업에 5∼7년 연속적으로 근무한 경우에 한해 응시자격이 부여되고 있으며 건축계획·건축법규·건축시공·건축구조 등의 필기시험과 설계 등 실기시험에 통과해야 자격증이 발부된다.
『사고 파는 집의 80%가 집 장수에 의해 건축되고 있어 거리를 지나다 보면 꼭 재질이 시멘트나 벽돌이어서가 아니라 무엇 때문인지 막막한 분위기를 풍겨주어 가슴이 아픕니다.
건물이든 주택이든 궁극적으로는 살 맛나고 친밀감 있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공간의 이용, 즉「인간다운 모습」이 되어야 할겁니다.』박씨가 의도하는 기본적인 공간 이용방법이다.
근래 들어 새로운 경향의 하나로 현대적 자재의 개발보다 검은 벽돌의 이용과 아치형 문이 대중화되는 복고풍이 유행되고 있어 현대적 미감을 즐기려는 초현대적 건축과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대해 박씨는「결국 취향에 맞는 선택으로 인식할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면서『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느낌이 일제시대를 맞아 단절되면서 서구화에 오히려 거꾸로 적응해나가는 역설적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가구는 민속품이어야 하고, 실내는 서구식으로 꾸며져야 한다는 식의 어설픈 유행에서 빨리 벗어나 편안함을 주고 개선 있는 주거환경으로 탈바꿈되어야 할 것입니다』며 획일화된 공간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74년부터 7년간 송민구 건축연구소에 근무하다 81년 중앙합동건축연구소를 설립, 직접 운영하고 있는 박씨는 같은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부군 동정근씨(36·건축가)사이에 1남1녀를 둔 주부이기도하다. <육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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