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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인상의 소재에 수법도 세련|「신춘문예」소설을 읽고…권영민<문학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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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의 소설문단이 전반적으로 그 정신적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관론을 채 거둬들이기도 전에 신춘문예의 관문을 통해 나서는 새로운 얼굴과 그 열정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문단에서의 신인의 등장이란 언제나 그 새로운 이름아래 펼쳐지는 문학의 새로움을 거느릴 때 더욱 가슴 설레게 하는 바 있다. 게다가 의욕과 투지의 만만치 않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형식을 준비해 온 진지성을 발견할 때, 새로운 이름에 대한 기대와 미더움이 함께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올해의 신춘문예소설부문 수상작으로 결정된『그 여름의 초상』(중앙일보·송춘섭),『서수필』(서울신문·이덕재), 『더듬이의 혼』(경향신문·이병천),『흉터』(동아일보·이영옥), 『모계사』(한국일보·이린),『위령제』(조선일보·정호승)등을 읽으면서 느낀 몇 가지 소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새로운 이름 앞에 내거는 하나의 기대와 미더움의 표시에 다름 아니다.
대체로 올해의 수상작들이 보여주고 있는 특징은 첫째 소설적 소재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작품내용에 짙게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달리 소재의 신 기성에 대한 집착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자칫 그 소재의 강렬한 인상으로 인하여 현상응모용 작품으로 조립된 의도적인 짓이라는 오해를 받기 쉽다.
소재는 작품의 내용을 이루는 핵심적 요소인데, 작가의 개인적 현실에서 하나의 특이한 유형으로 포착된 것일 때에 그 생명력을 갖는다. 작가의 개인적 관심과 소재의 가치 사이에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소설의 내용은 소재 자체의 영역을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위령제』나『서수필』의 경우는 이색적인 소재가 지나친 의도 성을 드러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 위험스런 균형을 깨뜨리지 않고 끝까지 긴장을 지탱한 점이 높이 살 만하다.
둘째로 올해의 신춘문예 수상작으로 선정된 소설들은 소재의 재편성과 새로운 해석을 위해 수법의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부여하고 있으며, 실제로 각 작품의 수법이 수준이상으로 세련되어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소설에서 소재에의 관심이 커지면 주제의식에의 경도가 함께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 소설가들은 전통적으로 소설의 세계에서 그 소재 내용의 의미에 주력하여 왔으며 소설에 대한 평가 자체도 내용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있는 게 보통이다. 이러한 주제의식에의 편향은 소설의 세계가 지향하는 상상의 자유로움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바로 수법의 발견이다.
소설에서의 수법이란 단순한 표현기교가 아니라 자신의 주제를 발견하여 그것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경험의 방편이다.『모계 사』가 보여주는 수법의 치밀성과『그 여름의 초상』에서 드러나고 있는 실험적 방법은 『더듬이의 혼』이 감당하고 있는 주제의식의 무게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중요시 될 수도 있다.
특히『그 여름의 초상』은 소설이 의존하고 있는 형식의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 와진 짜임새를 지니고 있다. 플롯의 개념으로 설명되고 있는 서사적 요건을 벗어버리고자 하는 이러한 시도는 스토리 위주의 소설적 테두리를 거부하는 태도임에 틀림없으며, 기존의 가치를 새로운 방법으로 극복하려는 용기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인의 신인다움이란 의욕과 열정의 순수함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인은 그 문학의 새로움에 의해서만 주목된다. 새로운 소재, 새로운 수법, 새로운 주제가 함께 어우러질 때 문학의 새로움이 가능해지는 것이라면, 신인다운 신인의 의지에 의해서 문학은 새로운 장에 접어드는 것이다.
자신의 시대에 대하여 성실하게 쓰고 자신만의 개인적 관점을 수립하고 자기자신만의 개인적 형식을 누릴 수 있을 때 소설은 삶의 확실성을 포괄할 수 있는 견고한 무 학의 양식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이 새로운 작가들이 자신의 이름 앞에 작가라는 또 하나의 명패를 달면서 드러내고 있는 부끄러움의 심경이 당선소감의 어조대로 오래 지속되며 이들의 모든 소설이 언제나 신인다운 의지를 담을 수 있길 기대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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