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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화시대의 예술활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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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시대의 분위기는 점차 자율화풍조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동안 일제36년과 광복이후의 36년이란 긴 기간에 정신적으로 구속과 타율의 부자연스런 관계를 강요했던 제약들이 비로소 폐지되고 있다.
20세기의 발전된 문명의 이기와는 친근하고 익숙해 있으면서도, 또 세계의 선진문명과 접촉하며 대화하며 살고 있으면서도, 사고의 경직과 생활의 규제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었던 한 시대의 청산은 실로 역사의 전기임에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자율화의 시대를 맞은 올해는 문화예술계도 일찌기 우리사회에 볼 수 없었던 참된 자유창작의 시대를 열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그것은 근거 없는 공상이 만들어낸 기대는 아니다. 지난해 말에 국회는 무대예술인들의 숙원이었던 「공연법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그 첫 번째 근거를 만들어준바 있었다.
우선 공연장 설치허가규정이 개선되어 3백석 미만의 연극전문 소극장은 공연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고 특별히 제한된 장소 아닌 학교의 강당이나 회사의 방에서도 연극이 가능해졌다.
지금까지 10명 이상의 단원을 갖고 1년 이상 공연실적이 있어야만 공연할 수 있었던 공연 자 등록제도도 개선되어 누구라도 연극을 하고싶은 사람은 공연활동을 할 수 있다.
개인의 창작에 바탕을 둔 프러듀서 시스팀에 의한 연극의 전문화와 상업화도 가능해졌다.
관람료한도액이 자율화되어 좋은 연극은 얼마든지 수익을 올리면서 발전할 수 있게된 것이다.
물론 이같은「자율화」엔 부작용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극단의 숫적증가가 연극개의 난맥과 부조리를 가져올 소지도 있다. 공공성보다는 개인의 이익이 지나치게 강조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연극활동의 자율화는 문화예술계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 분명하다. 의욕과 능력을 갖춘 신인들이 그들의 젊음과 예술의 의욕을 마음껏 불사를 여건의 조성이 분명한 때문이다.
지금 서울엔 14개의 소극장만이 있지만 앞으로 변두리 주거지역이나 공단 또는 웬만한 읍 면에도 소극장활동이 확대될 것이다. 통금해제와 함께 낮과 저녁으로 한정되던 공연시간도 밤까지 연장될 것은 물론이다.
예술활동은 공간과 시간의 확대와 규제의 틀만 없어져도 커다란 발전이 가능하다. 거기에 창작의 자유를 확대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비단 무대예술에 국한한 것이 아니고 영화 등의 예술활동도 마찬가지다. 제작자율화를 요구하고있는 영화인들의 주장도 충분히 경청할 여지가 있다.
무대예술의 자율화를 인정한 정부로서는 영화 등 예술활동의 자율화도 당연히 고려해야할 것이다.
그간 국책홍보영화를 강조하던 과거의 타성이 적잖게 해소되고 있는 것은 다행하나 사회성을 곁들인 작품에 대한 당국의 이해는 아직도 부족한 것 같다.
되풀이 말하거니와 문화예술은 원초적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사상과 창작활동의 소산이며 결코 타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창작연구활동의 자율성이나 비판기능의 깊은 이해와 보장 없이는 결국 문화예술은 꽃피기 어렵다.
그 점에서 정부가 지난해 「80년대 문화정책」을 발표하면서 표방했던 창조적 환경조성을 위한 문화예술분야법령의 개선은 당연한 것이고 올바른 것이다.
그 같은 정신에서 정부가 연극에 이어 영화 등 모든 창작예술활동에 자율화의 폭을 확대하는 노력이 기대된다.
물론 자유는 책임을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인들이 자유를 영구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노력과 지혜가 역시 요청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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