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기엔 아직 찜찜 … 평균 전셋값 2억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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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철 1호선 금천구청역 근처에 있는 서울 독산동 한신아파트(89㎡)의 5월 전셋값은 2억~2억500만원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2억3000만원짜리 전세 계약이 맺어졌다. 전셋값이 4개월 만에 15% 오른 셈이다. 이 가격이 더 오르지 않더라도 다음 달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세입자에겐 부담이 더욱 커진다. 이곳의 2년 전 전세 시세는 1억5000만~1억8000만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상승률은 28~53%가 된다. 이 때문에 아파트 재계약을 하려면 많게는 8000만원을 더 구해야 한다. 세입자가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올려준다면 한 달 이자(금리 4% 기준)로만 27만원이 필요한 금액이다. 이 지역 진승자 학사공인중개사 실장은 “전세 사는 사람이 2년 동안 얼마나 돈을 모았겠느냐”며 “이미 기존 대출이 있는 세입자는 전세금을 올려주지 못하는 만큼 월세로 대신하는 ‘반전세’로 전환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전셋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 9월 기준 수도권 평균 전셋값(2억106만원)은 처음으로 2억원을 넘어섰다. 정부 뜻대로 주택 가격이 오르는 가운데 전셋값도 함께 오르는 상황이 아니다. 집값 대비 전세가격 비율(전세가율)도 61.3%로 사상 최대치다. 3년 전 수도권 전세가율(50.7%)보다 10.6%포인트 올랐다. 집값 오름세는 지지부진한데 전셋값 상승폭은 크다는 뜻이다.

 정부는 그동안 전셋값 안정을 위해 세입자들이 집을 사도록 하는 정책을 만들어왔다. 사람들이 집을 많이 살수록 전세 수요는 줄고, 그만큼 전셋값 상승세가 꺾일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빚 내서 집 사라는 거냐’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7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하고, 지난달 아파트단지 재건축 연한을 40→30년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9·1 부동산대책을 발표한 것도 이 같은 의도에서였다. 정부 뜻대로 주택 매매량은 늘어났다. 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9월 수도권 주택 매매거래량은 4만2864건으로 집계됐다. 1년 전(2만6766건)에 비해 59.5% 늘어난 것이다. 올해 1~9월 거래량 합계도 32만376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5.3% 증가했다. 그런데도 정부 기대와 달리 전셋값 오름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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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에선 매매가 늘면서 전세 수요가 줄어든 것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전세 공급량이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잠실동 박명옥 황금알공인중개사 대표는 “59㎡에 7억8000만원이나 하는 전세도 매물이 없어 중개를 못할 정도”라며 “반전세나 월세 물건은 쌓여가는데 전세 매물을 찾을 수 없는 게 나로서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전세 보증금으로 이자 수입을 얻는 것보다 월세를 받는 게 더 이익이라는 생각이 집주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것도 전셋값 상승세를 부추기는 요소다.

경기도 고양시 백석동의 강성붕 우성한신공인중개사 대표도 “전세자금 대출 금리는 연 3~4% 정도인데 월세를 금리에 비교하자면 아무리 낮아도 5% 수준”이라며 “이 때문에 세입자는 당연히 전세를 찾을 수밖에 없어 수요가 생각만큼 줄지 않고, 그 시세가 점점 올라가는 것 같다”고 했다. 결국 ‘금리 하락→전세금 이자 수입 감소→반전세나 월세 전환으로 인한 공급 감소→전셋값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수요자들 사이에서 집값 상승에 대한 확신이 생기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분석했다. 김세기 한국감정원 주택통계부장은 “전셋값 문제 하나 때문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다시 올리긴 어려울 것 같다”며 “1~2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수요는 늘어나는데 집값이 오를 거라는 기대감이 없어 이들이 선뜻 구매에 나서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수 한국주택협회 진흥실장도 “부동산 활성화를 목표로 만든 법안들이 국회에서 원활하게 통과돼야 정책 신뢰가 생기고, 이에 따른 주택 수요 증가와 전셋값 안정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자리 문제와 같은 다른 경제여건이 함께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대출금 부담을 감수하면서 집을 사겠다고 나설 사람이 그만큼 없기 때문에 전세 수요가 줄어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9·1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만큼 효과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재정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9·1 대책 효과로 매매가 살아나고 있고, 전셋값이 오르고는 있지만 상승폭 자체는 둔화됐다”며 “중장기 대책으로는 신규 아파트 입주를 앞당길 수 있도록 지원하고,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지속적으로 늘려 전셋값을 안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최선욱 기자, 황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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