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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1988년 9월 올림픽 전야|글 김주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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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강화도의 달 곶이 앞 바다에서 한 무리의 갈매기 떼가 한강을 거슬러 날아올랐다. 갈매기 떼들은 서울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한강의 쪽빛 물결을 발견한 때문이었다. 그들은 쾌적한 마파람을 날개에 받으며 원효대교의 교각위로 날았다. 날개를 스치는 바람은 쾌적하고 등에 쐬는 뱃살은 따갑다.
갈매기들은 그곳에서 한강의 수심을 조절하고 있는 작은 땜을 만난다. 그리고 왕복으로 10차선이나 되는 남북 양편의 강변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홍수와 만나게 된다. 갈매기 떼들은 날개를 틀어 그곳에서 크게 원을 그리며 한바퀴 휘그르 돌았다. 수심이 열 길이나 넘어 보이는 쪽빛 물살 아래로 모랫바닥이 환히 들여 다 보이고 물결을 거술러 오르는 고기떼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고기떼를 본 갈매기 떼들은 들 팔매처럼 일제히 한강 속으로 내리 꽂히는 것이었다.
한강 5백90km. 어디에서나 각종 담수어가 뛰놀고 강변도로를 따라 심어진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 숲사이엔 띄엄띄엄 벤치가 놓였으며 낚시꾼들도 심심 찬 게 바라보인다. 안양천, 불광천, 중랑천, 탄 천과 같은 소문난 폐수 하천에 선 어느덧 오리 떼가 날아와 먹이를 찾아 헤엄치고 있다. 한강변은 이제 하 상의 무료개방 체육공원과 함께 l백만 서울시민의 건강과 여가와 휴식을 떠맡은 명실상부한 장소가 되었다.
어느 누구도 그곳에 단 한 장의 휴지라도 버리지 않았으며 공장의 폐수 구에서 독물을 흘려 보내지 않는다. 폐수정화시설은 완벽하고 소비자들은 자기 소유의 공장폐수 구 아래서 먹이를 건져 올리는 오리 떼를 찍은 기업광고를 낸 회사의 제품을 불티나게 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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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교에서 팔 당까지를 왕래하는 유람여객선이 물살을 가르며 압구 정의 숯내(탄천) 앞에 이르면 잠실의 서울종합운동장 위용이 두둥실 시야를 가로막게 된다. 16만5천 평의 대지 위에 세워진 이 운동장안에는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을 비롯해서 2만 명수용의 실내 체육관, 실내수영장, 자건 거 경기장, 야구장, 보조경기장이 들어섰고 잠실을 지나면 둔촌동 일대 82만평의 국립종합경기장 부지에는 역도·펜싱·궁도·필드하키·승마경기장과·선수촌·프레스센터·쇼핑센터·병원·우체국·극장이 들어선 올림픽촌과 만나게 된다.
이곳은 오늘에 이르러 서울 동부지역의 새로운 부도심이 되었고 스포츠용구와 스포츠웨어 시장의 거래 중심지가 되었다.
국내의 전문적 스포츠용품회사나 의류제조업체에서 질과 디자인을 앞다투어 개발했기 때문에 특히 한국의 스포츠웨어는 세계적인 각광을 받게 되었고, 외국의 바이어들이 속속 입국하고 주문이 가속도로 늘어나서 그 부문의 수출업체와 중소기업들은 근래에 없었던 호황을 누렸으며 그들 업체의 증권은 상투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연일 상종 가를 보였다.
재미를 보고 있는 업체는 그들뿐이 아니었다. 20만 명의 외국인이 서울에 체류했다.
그들은 값비싸고 실용성 없는 미술품보다는 강화도의 화문석, 전남 보성의 용문석, 경남 화계의 녹차(연다), 경북 경주에서 재현한 신라토기, 경북 예안의 명주와 게추리(저포), 충남 당진의 매병, 전남 광주의 전다리붓, 충북 보은의 대추, 천안의 호도, 경남 김해의 곶감 등 값싸고 실용적인 토산품을 즐겨 찾았고 탈과 바가지공예품 등 우리 고유의 생활용구들을 이용해서 발전시킨 토산 아이디어 공예품도 날개돋친 듯 팔린다.
만생 종인 광주 무등산 수박은 호텔과 선수촌으로만 가서 시중에선 맛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요, 전주 비빔밥을 사 먹으려면 적어도 3일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종로2가와 4가 사이에 걸친 뒷 회랑의 선술집은 외국관광객들의 관광명소가 되었고 한복을 만드는 집에서는 주문과 독촉으로 날을 새게 된다. 모든 전통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연극무대는 빌 사이가 없다. 중공의 운동선수들이 올림픽에 대거 참가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교류의 문이 트여 각 기업과 연구단체에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이듬해 각 대학의 중국어 과는 유사 이래로 볼 수 없었던 극심한 지원경쟁률을 보이게 된다.
올림픽촌을 나선 외국인은 지도 한 장 만 들면 서울의 어디든 내키는 대로 찾아가기 어렵지 않다. 올림픽촌에서는 물론이요 4호선까지의 지하철과, 구로와 성남간, 불광동과 성남간, 김포공항과 문래동 간의 외곽 지하철이 완공되고 지하철역마다 에는 소규모의 간이약방·서점 혹은 전시장 같은 문화시설도 갖추었고 원하는 음료수를 자동판매기에서 살 수 있으며 객차하며 지하철역이 깨끗하기로는 세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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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을 나서면 훨씬 조용한 도심의 거리와 만나게 된다. 넓은 길보다는 좁은 간선도로와 주택지를 관통하는 도로가 많이 생겨 교통문제가 보다 심도 있게 집행되었다는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것뿐이 아니다.
신촌 로터리와 서강대 교를 잇는 서강대로와 장충 체육관과 도산 공원을 잇는 금호대로, 말죽거리와 대 곡로 등의 외곽도로가 뚫리므로 도심을 돌지 않고도 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길이 여럿 생겼다. 도심과 주변을 잇는 방사선 도로는 지하철이 완공되면서 고속화도로로 변한 곳이 많다.
지하철이 정거하는 서울 변두리와 경기도 일원이 시간대의 생활권으로 밀착되면서 그 경제권도 역시 통합되었다. 거의 배로 증축된 서울역사에 나가면 서울과 부산을 2시간대에 잇는 고속전철을 타게 된다. 교통수단의 다변화와 고속화로 서울토박이란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김포공항 외에도 서울에서 고속도로로 1시간 거리인 △△에 새로운 국제공항이 건설되어 적어도 10여 개국 국적의 항공기들이 간단없이 이·착륙한다. 공항주변에는 호텔과 사무실빌딩·은행·보험회사·병원 등 서비스업체가 들어서게 되고 서울은 다시 인구 20만 명이 넘는 위성도시를 갖게 되었다. 곳곳에 호텔이 들어서고 쇼핑센터와 백화점이 대 여섯 개 정도 더 생겼다.
서울은 호텔 객실 5만개 이상을 갖춘 국제도시로서의 면목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경주의 보문관광 단지와 부산피서지의 호텔들은 개장이래 처음으로 엄청난 흑자를 기록하고 보문관광 단지의 호텔학교 졸업생들은 전세가 났다.
길거리를 질주하는 시내버스와 택시의 색깔은 훨씬 다양해졌고 옛날의 그 치졸하던 원색 일변도를 벗어나 간 색 계통이 주조를 이루었다.
그것이 도시미관은 물론이요, 도시인들의 정서생활에도 안정감을 준다고 서울특별시장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암울한 회색과 굳은 갈색으로 을씨년스럽기만 하던 빌딩들은 그동안 가꾼 녹지대 만들기와 나무심기로 하여 중화되고 조화를 이루어 쾌적한 거리환경을 만들고 있다.
북쪽을 막았던 고층건물들은 그동안 수리가 계속되어 북쪽으로도 창을 내고 전국의 도시에 있는 빌딩의 모든 옥상은 공원화 되었거나 잔디밭으로 탈바꿈했다. 전국의 도시들은 도심의 몇 군데를 제외하곤 교통순경의 호루라기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고 외곽지대로 나가면 가로수 밑에 한가로이 앉아서 포킷 용 책자를 읽고 있는 교통경찰의 모습을 심심 찬 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자가운전이 많아졌고 승용차 차종만도 10개 이상이 되어 각자가 자기의 취향에 맞는 승용차를 선택하는 폭이 넓어졌고 지하철의 건설로 영업용택시의 수효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접촉사고 같은 것이 일어나도 교통순경은 멀찌감치 비켜서서 웃고 바라보고 서 있다. 길거리엔 노점상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상가의 간판들은 간편하고 세련되었다.
1주일에 5일만 근무하는 기업이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출퇴근시간의 탄력 제 도입으로 러시아워가 훨씬 짧아졌다. 자연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가족동반의 나들이가 7년 전에 비해 부쩍 늘어났다. 옥내가 아닌 노천찻집이 전국의 각 도시엔 많아졌다. 남편은 바깥일, 아내는 집안 일이란 종래 고유한 개념이 점차로 퇴색되고 부부간이 서로 동 등한 위치에서 상부상조하는 생활방식이 뚜렷해졌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부쩍 늘어나서 여성은행장도 있고 국내 재벌기업 30개안에 여사장이 5명이나 된다.
도시의 아파트생활에 진 역이 난 도시민들이 그들의 고향근방으로 생활근거지를 옮겼거나 농장경영에 손을 댄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아옹다옹 도시로 나가 살아야 한다는 도시선망풍조가 헛된 꿈이란 것을 많은 사람이 깨닫게 되었다. 시골집에서 아침을 먹고 4백 리 밖에 있는 도시로 나가서 점심하고 집에 와서 7시의 저녁뉴스를 듣는 것은 이젠 이야기 거리로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올림픽 고속도로의 준공으로 영호남의 교류가 활발해졌으므로 농산물과 공산품이 1일 만에서 교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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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가 부쩍 늘어나고 도시와 농촌이 똑같이 탁아소시설이 완벽하게 되어서 전문적이고 고급화된 인력이 생산업체에 대량 공급되었다. 탁아소 시설이 고급화되고 보편화됨에 따라서 대학교수보다 탁아소 보모의 월급이 더 많게 되었다. 은행이나 관공서의 거래와 출입은 전화 한 통으로 결재되는 일이 많아졌고 슈퍼마킷이나 백화점의 배달제도가 일반화되었다.
이를테면 대행회사 같은 것이 많이 생겨났다. 심부름을 대신하고, 출장을 대신하고, 집을 보아주고, 조사업무를 대신하는 종류의 회사들이 늘어나서 싼 댓 가를 치르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고 보다 전문적인 일에 깊이 있게 몰두할 수 있게도 되었다.
사람들은 거의 맹목적이고 충동적인 레저풍조에서 벗어나 보다 개성 있고 품위 있는 레저를 즐기게 되었다. 기차나 버스 같은 육로여행보다는 바다를 이용한 레저산업이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했다. 제주도와 울릉도가 대규모로 개발되고 울릉도에도 비행장이 들어선다. 바다 위를 나는 패려슈트 타기, 또는 수상오토바이가 개발된다든지, 스쿠버 다이빙 같은 보다 모험적이고 박진감 있는 바다레저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해저전망대가 있는 선상호텔이 생기고 인천과 제주도 울릉도와 포항을 잇는 장거리 쾌속여객선이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관광지에서 술을 퍼마시고 춤을 추고 시비를 일삼는 식의 추태도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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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타인이 누릴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침해를 가장 두려워하게 되었다. 독서를 하려는 사람에겐 독서를,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에겐 운동을, 연구하려는 사람에겐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인간존중의 풍토가 사회에 충만해서 좀처럼 질서를 깨뜨리려 하거나 그것을 깨뜨림으로써 받게 되는 멸시를 무서운 수치로 알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부러워하는 만큼 가난한 사람도 부자의 부러움을 살 만한 자산을 지니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그 부모와 이웃을 사랑하듯이 자연을 사랑한다. 산에는 나무가 울창하여 고목이 썩어 넘어져 있고 낙엽은 무릎에까지 차 올라 있다. 산 협을 흐르는 계류는 쪽빛이고 나무사이에는 수십 종류의 새들이 날아다닌다.
그동안 7년여에 걸친 자연보호운동으로 장마 때도 홍수를 볼 수 없게 되었고, 도시 변두리에서도 꿩과 노루를 볼 수 있으며 지방에서는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보도가 자주 신문지상을 오르내리게 되었다. 지방의 경관 좋은 곳에서는 기업들이 세운 연구소나 연수원 건물들이 그 빼어난 자태를 뽐내며 들어서 있다. 도심의 병원보다 지방의 경치 좋은 곳에 세워진 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올림픽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렸거나 잃어버린 우리의 것에 대한 새로운 애착과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만의 외국관광객이 우리나라에 와서 보고 듣고자 했던 것은,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빌딩이나 회색의 도시나 기계화되고 자동화된 생활패턴이 아니라 우리 선 조들의 투박하고 성긴 손으로 만들어 남긴 우리의 물건이나, 선 조들의 한이 남겨 둔 우리의 소리나 근대화된 과정에서 속절없이 버려졌던 모든 투박한 나막신문화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택시 운전사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의 욕설, 버스 안내양이 무심히 한번 흘긴 눈길, 그리고 잠깐 범하고 가볍게 잊어버린 무질서 따위가 우리의 체통과 품위를 지키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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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프랑스의 파리에 가서 열흘이나 체류하는 사이에 본 것이라고는 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비옷을 발등까지 내려오게 입은 파리의 순경이 길모퉁이 건물 아래로 비켜서서 책을 읽고 있는 단 한가지를 보았다고 말했듯이, 20만의 외국사람들이 이 나라에 와서 볼 수 있는 것도 우리의 모든 것 중에 단 하나 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한강을 헤엄쳐 오르내리는 싱싱한 담수어를 우리들의 조촐한 식당에 서슴없이 올려놓았을 때 우리는 국토를 아름답게 지킨다는 것이 인간생활자체의 품위를 지킨다는 일과 곧바로 연결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으며, 푸르고 정돈된 우리의 국토를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이 아름다운 나리의 백성 되어 있음에 가슴 뿌듯했음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나라에 살고 있음도 깨닫게 되었다.

<작가 약력>
▲39년 경북 안동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 ▲70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 데뷔 ▲주요작품『머저리에게 축배를』『아들의 거울』『용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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