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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 이 사람!] 한산도 선생님의 '음악 대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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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 경남 통영시 한산중학교 음악실에서 박종화 교사(오른쪽)가 학생들의 연주를 지휘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경남 통영시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한산도. 이 섬에 자리 잡은 전교생 27명의 한산중학교엔 활기가 넘친다. 학생들의 얼굴은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표정이고, 교실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 학생들은 열등감에 젖어 학교 전체가 활기가 없고 교사들의 말도 듣지 않는 말썽꾸러기가 많더라고요."

박종화(38.음악담당) 교사는 지난해 3월 이 학교로 부임했을 때의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교생의 70%인 19명의 학생이 소년소녀가장이거나 편부모 자녀 등 결손가정이었다. 섬의 특성 때문에 부모가 바다에 나갔다가 사고를 당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학생들에게 음악으로 자신감을 심어줘야겠다고 생각한 박 교사는 오케스트라를 만들기로 했으나 악기 값이 부담스러워 리코더로 바꾸었다. 음 높이에 따라 개당 30만~40만원 하는 리코더도 박 교사가 아는 악기점에서 빌려와 시작했다.

처음에 학생들은 "마음대로 놀지도 못하고 귀찮게 하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공부는 안 가르치고 웬 '서양 피리'를 불게 하느냐"며 항의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박 교사는 학생들을 다독거리고 동료 교사들은 가정방문을 통해 학부모들을 설득했다. 수업 시작 전 1시간, 점심식사 뒤 30분, 방과 후 1~2시간 등 하루 2~3시간씩 연습을 했다.

여름방학 때는 교실에서 재우면서 합숙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아이들의 식사는 박 교사의 부인(38)과 세 자녀가 맡았다.

이렇게 해서 '섬마을 리코더 합주단'은 지난해 10월 19일 마산서 열린 경남중등학생 학예발표회 무대에 처음으로 섰다. '나팔수 휴일' 등 힘든 곡을 훌륭하게 연주한 뒤 청중으로부터 박수를 받은 학생들 사이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굳은 표정으로 수업받던 학생들이 질문을 자주하고 교무실을 부담 없이 드나드는 등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인준(15.2년) 학생회장은 "우리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었고 서로 협조할수록 좋은 화음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내친김에 그해 11월 5일 지역주민을 위한 '한산 음악회'를 열었다. 연주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본 주민들도 태도가 바뀌었다. 이모(45)씨는 "술로 지새우는 날이 많았는데 딸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자식 키우는 보람을 느꼈다"며 " 이젠 술을 끊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합주단이 섬마을을 변화시킨다는 소문이 나자 초청공연 신청이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10일 교육인적자원부 주최로 대전에서 열린 '제1회 교육현장 혁신포럼'에 우수사례로 초청받았다. 경남의사회는 4월 16일 합주단을 창원 대산미술관으로 초청, 음악회를 열어주고 관광을 시켜주는가 하면 악기구입비 400만원을 내놓기도 했다.

한산도=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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