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맞춤형' 메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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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최근 작고한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 앞으로 편지가 왔다. "덕택에 우승했습니다. 모두들 제 바이올린을 부러워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는 당시 덴마크 카를 닐센 국제바이올린콩쿠르에서 1등을 한 음악 영재 권혁주씨(20.러시아 차이코프스키음대)가 보낸 것. 권씨는 금호문화재단이 빌려 준, 수억원 짜리 과다니니의 명품 바이올린을 갖고 대회에 나가 우승했다. 그래서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당시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이었던 고(故) 박 회장에게 편지를 쓴 것이었다. 권씨는 1998년 금호문화재단에서 무료로 바이올린을 받아 각종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금호문화재단은 권씨 말고도 21명의 음악 영재들에게 과다니니 바이올린과 스타인웨이 피아노 등 명품 악기를 무상으로 빌려주고 있다. 대여 기간은 10년. 이 사업은 '문화예술 CEO(최고경영자)'로 불리었던 고 박 회장의 지시로 1994년 시작했다. "명품 악기는 소리가 다르다. 그런데도 한국의 음악 유망주들은 명품 악기가 없어 국제 콩쿠르 등에서 빛을 내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권씨 말고도 손열음양(18.한국예술종합학교4)이 올초 이스라엘에서 열린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등 금호가 지원한 음악 영재들이 한국의 예술 실력을 세계에 떨치고 있다. 금호만의 독특한 메세나 사업이 '문화예술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금호처럼 독특한 메세나 사업을 벌이는 기업들이 많다. 삼성전자는 중국 옌볜(延邊)에서 한국 동요제를 열고 있다. "중국 동포들이 사상적 동요를 많이 부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국내 동요운동가들이 삼성전자에 요청해 '동심을 담은 우리 동요 부르기 대회'를 열게 된 것. 2001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5회째다. 삼성전자는 국내에서도 1984년부터 어린이 동요부르기 대회인 '초록 동요제'를 매년 열고 있다. 옌볜과 마찬가지로 창작 동요가 아니라 기성 동요를 부르는 잔치다. 올해는 중국.일본.미국.캐나다 동포 어린이들도 초청해 '국제 대회'로 열 계획이다.

교보생명은 강릉 단오제, 충주 우륵문화제, 안성 민속축제 등 지역 축제를 후원한다. 지방의 전통 문화를 살려나간다는 취지로 1980년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교보생명의 도움을 받은 지역 문화 축제가 250개를 넘는다. 연간 지원 규모도 2억5000만원에 이른다.

르노삼성자동차도 '전통'에 촛점을 맞췄다. 정월 대보름 관련 전통 행사를 후원하고, 서울 종로문화원에 인사동 문화발전기금도 대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국립극장과 함께 '한국 가요제'를 열고 있다. 최신 힙합이나 랩 등과 전통 가락이 결부된 창작곡의 경연장이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한국에 뿌리를 둔 기업이라는 인식을 넓히려 이 같은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인스닷컴 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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