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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과 대리기사의 맞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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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사회부문 차장

지난달 17일 발생한 세월호 유족들의 50대 대리기사 이모씨 폭행사건은 대응만 잘했더라도 단순 폭행사건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게 국민적 관심사안으로 떠오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폭행 당사자가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현직 위원장(김병권), 수석부위원장(김형기) 등 고위 임원이란 점이 그중 하나다. 이들이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며 경찰 출두를 미룬 것도 악재였다. 남은 퍼즐은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이 연루된 ‘사태의 발단’ 부분이다. 이달 초 경찰 대질신문에서 김 의원과 대리기사 이씨의 진술은 엇갈렸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대리기사 이씨는 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날 대리 호출을 받고 현장에 간 뒤 30분 정도 (술자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너무 지체돼 가기 힘들겠다. 다른 사람을 이용해 달라’고 하며 김 의원에게 자동차 키를 돌려줬다. 이때부터 실랑이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씨가 밝힌 그 다음 상황은 이랬다.

 ▶김 의원=“이렇게 가면 안 되죠.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그것도 못 기다려요. 대리운전 회사 전화번호를 대세요, 소속이 어디예요?”

 ▶이씨=“대리기사지만 기본 인격을 존중해 주셔야죠. 시간이 더 지체될 것 같으니 더 기다려 줄 수 있겠느냐 해야지, 길 바닥에 세워 놓고 마냥 본인 얘기만 하면 됩니까.”

 ▶김 의원=“소속이 어디냐니깐.”

 ▶세월호 유족=“당신 대리기사 맞아요?”

 이씨는 “이 와중에 김 의원이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반말을 했으며, 옆에서 세월호 유족들이 ‘의원님, 의원님’ 하길래 김 의원에게 ‘도대체 무슨 의원이냐’고 물었다”고 했다.

 ▶김 의원=(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주면서) “어, 나 국회의원이야.”

 ▶이씨="대리기사라서 명함이 없습니다.”

 ▶김 의원="신분증 보여 주세요.”

 ▶유족=“의원님 앞에서 공손하지 못하게 뭐하는 짓이요? 국정원 직원 아니요?”(유족이 이씨 얼굴 사진 촬영)

 ▶이씨=“일반 대리기사입니다.”

 ▶행인=“국회의원이 이러면 안 되지. 요즘엔 이런 거 트위터에 올리면 돼요.”

 ▶유족=(행인과 이씨의 팔을 잡으며) “너도 국정원이지?”

 ▶행인=“일반시민이야. 이거 놔.”

 ▶김 의원=“명함 뺏어.”

 이씨는 “이후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원인은 김 의원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 사건은 힘센 국회의원, 그와 술자리를 같이했던 가족대책위 유족들이 일반인을 상대로 ‘촌스러운 갑(甲)질’을 하던 중 벌어진 활극이 된다. 물론 김 의원은 “폭행 장면을 못 봤고 자동차 키를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다”며 부인했다고 한다. 앞서 김 전 위원장 등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그러나 “세월호 유족들이 완장을 찼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기각된 것은 아니다. 유족들이 폭행사건을 세월호 침몰 때의 초심(初心)을 찾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그땐 유족들의 마음이 민심이자 천심이었다. 여든 야든 정치권과 거리가 있을 때였다.

조강수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