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호하는 족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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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족보에도 현대화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변색된 한지(한지) 에 순 한문이 깨알같이 들어차 있고 벽자(벽자=흔히 쓰이지 않는 한문자)가 나오는가하면 간지(간지)로 연월일을 표기, 시대어림조차 힘들어 한문실력이나 보학 (보학)에 대한 상식이 없는 사람들에겐 그저 「골치 아픈 책」이라는게 족보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이었다.
특히 남자위주의 세보(세보)이기 때문에 소위 「족보에도 끼지 못하는 여자」들에겐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시대변천에 따라 우리나라 족보도 근대화되어 순 한글 족보가 나오는가 하면 흑백 또는 컬러사진이 들어가고 딸자식도 기재되는가 하면, 어려운 옛 고유명사에는 알기쉽게 주석을 붙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족보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한글세대의 층이 두터워졌고 남녀평등사상이 높아졌으며 순수 우리말 찾기에 따른 민족주체사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을 의미한다는 것.
족보발간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 출판사 회상사(충남 대전시 중동47의4)사장 박홍구씨(60)는 제본양식에 있어서도 표지에 밀(밀)칠을 하고 층이 끈으로 한 장 한 장씩 묶는 순 한식 (한식)에서 모조지에 인쇄하고 특수지로 표지를 하는 양장재본이 유행하고 있다고 했다.
또 족보의 글자체도 목판본(목판본)에서 석판본→명조체(명조체) 활자→청조체(청조체) 활자로 보다 선명하고 알아보기 쉬운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손이라면 누구나 조상의 이력을 알아 볼 수 있게 한다』는 취지에서 한글전용 족보를 편찬한 문중은 79년의 「함평리씨 목사공파보」와 「고흥류씨 검상공파세보」「한산리씨 사복사정공파보」「밀양박씨 밀산군 직계세보」등.
고려말의 거유(거유)목은 이장의 후예인 한산리씨족보는 시조 목은에 대해 『이 할아버지의 이름은 색(고)이라 하고 호는 목은(목은)이라고 하시었다』는 식.
사진을 곁들여 편찬한 족보가운데 최초의 것은 75년의 「유씨 대동보」.
이 족보는 인물사진을 곁들인 외에도 항렬을 따지지 않고 세례명을 기재했고, 딸의 경우「보라」「기쁨」「보람」「달님」등 순수 우리말 이름을 삽입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생년월일·사망일 등 모든 연대를 간지대신 서기연수로 쓰고 페이지 면수도 천자문대신 아라비아숫자로 표기한 것은 「여천리씨 밀양파보」.
과거의 족보는 아들이름을 순시로 쓴 뒤 딸 차례에서는 「여」표시를 하고 이름칸에는 그 남편 이름과 남편의 족보를 간단히 적어 넣을 정도로 남존여비가 철저했다. 족보에 딸이름이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해방 후.
조상의 이름자에 한글토를 다는 것은 「무례한」것으로 여겨오다 이를 타파한 것이 「의령 남씨 진사공파세보」(78년). 이 문중의 족보는 조상뿐만 아니라 그 부인의 성에도 한글토를 달았고 다른 문중에선 찾아보기 힘든 부인 이름석자를 모두 기재했다. 또 딸의 경우 미혼일 때는 큰 활자를 썼고 기혼일 때는 남편과 함께 작은 활자를 쓴 것이 특징.
어느 문중이나 관직에 관한 한 고려·이조의 관직은 정일품(정일품)에서 종구품(종구품)까지 모두 기록, 아직 문벌에 대한 의식이 강하지만 최근엔 문중마다 그 기준을 정해 그 이상의 관직만 기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공무원은 사무관 이상, 군인은 영관급 이상, 교육공무원은 국민학교 교장 및 교수이상, 회사장 및 단체장이상 등만을 기재하는게 통례라는 것.
그러나 울산 김씨문중은 김성수씨만 제외하고는 모두 생략하고 있고 「유씨 대동보」처럼 기준 없이 몽땅 기록, 한 사람의 일생이력서를 보는 것 같은 예외도 있다는 것이다.
『족보는 한 가족의 역사로서 공통된 정신적 유대를 상징하는 하나의 문헌』이라는 박홍구 사장은 족보편찬의 한 세대를 30년으로 보고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족보의 기재법은 또다시 변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조상들의 선과 덕을 후손들이 본받아 더욱 갈고 닦기 위해서 족보의 우리말편찬 등 근대화작업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고 박사장은 말했다. <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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