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 조치 해제 분위기 무르익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 최고위급 대표단의 방문을 계기로 정부 내에서 5·24조치 해제 논의가 꿈틀거리고 있다. 모처럼의 대화 동력을 살려 나가야 한다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5일 “북한이 잘해보자는 취지에서 다녀간 만큼 5·24 조치 문제를 비롯해 남북 간에 걸려 있는 여러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기가 마련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해제 논의를 하게 되더라도 부분적 해제를 원칙으로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야 한다”며 “미리 앞서나갈 필요는 없다”고 신중한 입을 보였다.

 정부는 천안함 피격 사건,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에 대해 북한이 진심으로 사과하기 전에는 5·24 조치를 해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어렵게 성사된 2차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이런 원칙론만 고집하기에는 정부도 부담이 크다. 북한이 이를 최우선 의제로 삼는데 남한이 완고하게 버틸 경우 북한이 다시 대화에서 도발로 태도를 전환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또 다른 당국자는 “북한이 뭔가 진정성 있는 조치를 선행해야 한다는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어느 정도를 진정성 있는 조치로 볼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정부 내에서 좀 더 논의가 필요한 문제이고, 남북 간 회담장에서도 대화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외교안보팀 내에서도 5·24 조치가 남북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적지 않다. 다만 해제를 공식 거론할 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는 대북정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5·24 조치의 핵심은 남북 간 교역과 교류의 전면 중단이다. 그런 만큼 박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언급한 비무장지대(DMZ) 생태공원 조성이나 광복절 경축사에서 내년 광복 70주년 기념 문화행사를 함께하자고 제의한 것도 엄밀히 보면 5·24 조치에 배치된다. 통일부가 지난달 30일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의 육로 방북을 승인한 것도 교류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

 여당인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10·4 인천 회담을 계기로 5·24 조치 해제를 본격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건 그 때문이다. 유기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5일에도 “5·24 조치는 남북관계를 전면 중단하자는 것인데, 그러면 이번에 최고위급 실세들이 어떻게 남한에 왔겠느냐. 이미 5·24 조치는 철 지난 이야기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지금 거론되고 있는 이런 의견들이 정부 입장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5·24 조치 해제와 관련된 결정을 할 때 큰 힘이 돼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절대 안 된다’에서 뉘앙스가 달라졌다는 얘기다.

 반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우리 장병과 금강산 관광 중 희생된 국민에 대한 기억은 절대 잊어선 안 된다”며 “ 그냥 5·24 조치를 풀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