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진경의 취리히통신] 국제결혼 탕웨이, 사랑하는 부부는 완벽한 언어 필요 없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영국인 작가 제이미가 포르투갈인 가정부 오렐리아에게 포르투갈어로 청혼하는 장면. 오렐리아는 영어로 “Yes”라고 답한다. [사진 영화 공식 웹페이지]

안녕하세요, 탕웨이씨. 지난 2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에 선 당신의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어요. 참, 김태용 감독과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금쯤이면 ‘안녕하세요’나 ‘축하합니다’ 같은 한국말은 잘 아실 것 같군요. 제가 누구냐고요? 당신은 저를 모르시지만 저는 당신을 잘 압니다. ‘색, 계’와 ‘만추’를 비롯해 당신이 출연한 영화들을 몇 번이고 본 팬이거든요. 언뜻 보면 수수한 외모로 역할 따라 빛과 그늘을 거침없이 오가는 당신이야말로 타고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을 찬양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아니고,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어요. 먼저 제 소개를 간단히 할게요. 전 4년 전 스페인 남자와 결혼해 지금 스위스에 살고 있습니다. 탕웨이씨 부부처럼 국제연애 끝에 국제결혼을 한 경우죠. 서로의 언어를 잘 못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점도 같아요. 그래서인지 김태용 감독의 결혼 발표문 중 ‘그 어려운 서로의 모국어를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라는 부분이 유난히 눈에 들었습니다.

 전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스페인어 학원에 등록해 다니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온갖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한국어를 공부했고요. 서로의 스페인어, 한국어 실력이 쑥쑥 늘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정작 둘 사이 대화는 영어로 하니 배운 걸 써먹을 기회가 딱히 없었던 거죠. 그렇다고 영어로 물 흐르는 듯한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희 둘 모두에게 영어는 외국어니까요. 말이 잘 안 통하는데 어떻게 연인 사이의 깊은 감정을 주고받느냐고,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들 했죠.

 탕웨이씨도 아마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보셨겠죠? 한국에선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이 영화를 TV에서 볼 수 있답니다. 여러 특이한 커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엮은 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커플은 영국인 작가 제이미와 포르투갈인 가정부 오렐리아입니다. 둘 사이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분홍빛 감정이 피어오르는 듯하다가도 전달이 안 되니 답답한 상황이죠. 그러다 결정적인 일이 생깁니다. 연못가에서 제이미가 글을 쓰던 중 원고가 바람에 날려 물속에 빠지고 둘은 종이를 건지기 위해 연못에 뛰어들죠. 급박한 상황에서 얘기가 오갑니다. “건져낼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할 텐데.” “이건 다 쓰레기야, 주울 필요 없어요.” “이 연못엔 장어가 사니까 조심해요.” “지금 물린 것 같아요.” 서로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은 다른 언어로 말을 하면서도 의사소통이 되는 신비(?)한 체험을 합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저도 비슷한 일을 종종 겪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도무지 영어로 떠오르지 않아 끙끙대고 있으면 남편이 마치 속을 들여다본 듯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 하고 대신해 주는 거죠. 경험상 언어보다 더 중요한 건 서로의 역사, 정치, 문화에 대한 이해입니다.

 말이 잘 안 통해 도리어 좋은 점도 있습니다. 부부 싸움을 할 때인데요. 영어로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게 둘 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분히 이성적으로 싸우게 됩니다.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고 발음을 정확히 다듬다 보면 어느새 싸움이 일어난 원인이 시들해 보이더라고요.

 이런 농담을 들어보셨나요. “국제학술대회의 공식 언어는 영어가 아니라 ‘어설픈 영어’다.” 각국에서 모인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영어에서까지 최고는 아니니 말이죠. 그래도 학술대회 운영엔 문제가 없습니다. 좀 느리고 더듬어도, 저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다들 알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모두 각자 살아온 세계의 전문가입니다. 자기 세계만 뚜렷하다면 그걸 전달하는 언어가 문법적으로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걸 알 만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게 사랑이니까요. 탕웨이씨 부부의 결혼을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김진경 jeenkyungkim@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