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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러디도 이 정도면 블록버스터급…화제의 광고 ‘배달의 민족’ 탄생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쫓고 쫓기는 긴박한 오토바이 추격전. 돌연 자동차가 화염에 휩싸인다.

급기야 ‘악의 축’을 향한 주인공의 분노가 폭발하는데…. 영화 예고편처럼 만든 광고 한 편이 큰 화제다.
배우 류승룡(44)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배달의 민족’ 광고다. 광고가 방영되는 TV와 극장은 물론, 유튜브(YouTube)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영화의 익숙한 장면들을 패러디한 영상과 재치 있는 대사 등 B급 정서가 충만한 이 광고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영화 ‘명량’(7월 30일 개봉, 김한민 감독)이 흥행 위세를 떨치던 8월의 어느 날, 서울의 한 극장에서 최민식·류승룡 등 배우들과 감독이 무대 인사차 단상에 올랐다. 진행자로부터 마이크를 건네받은 류승룡이 대뜸 객석을 향해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고 외쳤다. 그러자 객석에선 폭소와 함께 “배달의 민족!”이란 답변이 울려 퍼졌다. 자신이 출연 중인 광고 카피를 상황에 맞게 응용한 류승룡의 재치에 관객들이 조건반사적으로 호응한 건, 이 광고가 그만큼 대중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됐다는 얘기다.

배달 음식 주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인 ‘배달의 민족’ 광고는 올해 4월 공개된 ‘명화 패러디 편’부터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밀레의 ‘만종’,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고구려 벽화 ‘수렵도’ 같은 고전 명화를 패러디해 작품 속 인물들이 배달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위트 있게 표현했다. 특히 류승룡이 진지한 표정으로 배달된 치킨을 뜯거나, 짜장면을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이 폭소를 자아냈다. 진중함과 유머를 고루 갖춘 배우 류승룡의 이미지가 키치적 정서와 잘 맞아 떨어진 패러디 광고라고 평가 받았다.

‘영화 예고편’은 이에 탄력 받아 8월에 나온 속편이다. 우선 웃음기를 쫙 빼고, 진짜 영화 예고편처럼 찍었다. 액션·누아르·멜로·미스터리 등 다양한 영화의 익숙한 장면들을 패러디한 영상이 1분 이내의 분량으로 긴박하게 펼쳐진다. 예를 들어, 누워 있는 류승룡 위로 수많은 전단지가 떨어지는 장면은 ‘아메리칸 뷰티’(1999, 샘 멘데스 감독)에서 여인의 몸 위로 장미 꽃잎들이 무수히 떨어지는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 밖에 오토바이 추격신, 자동차 폭발신, 복도 추격신 등 액션영화에서 흔히 볼 법한 장면들이 여럿 등장한다. 광고 효과가 올라간 것은 물론이고, 진짜 영화 예고편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생겨날 정도로 반향이 컸다. 영화를 패러디한 이 광고의 카피와 장면을 활용한 또 다른 패러디물이 수없이 만들어졌다. 대중이 광고 자체를 재미있는 콘텐트로 받아들인 결과다.

배달의 민족’의 버스 광고. 광고 문구의 ‘신혜’는 배우 박신혜다. “경쟁사 모델인 박신혜가 무척 예뻐서 광고 문구에 이름을 넣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류승룡과 박신혜는 영화 ‘7번방의 선물’(2013, 이환경 감독)에서 부녀로 출연했다. 그래서 이 광고를 영화와 연관지어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다.

이 광고의 촬영은 서울의 회현시범아파트와 세운상가, 경기도 일산의 폐차장이나 폐쇄된 놀이공원 등 실제 영화 촬영지 20여 곳에서 나흘간 진행됐다. 광고에는 류승룡 외에도 실제 배우들이 여럿 출연했다. “치킨 먹은 포인트로 깐풍기 시킬 수 있었대”라며 정신적 충격으로 무너지는 연기를 한 이는 연극 배우 김현정, 배달 음식으로 가득한 상 앞에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식전이지?”란 말로 류승룡의 분노를 폭발케 하는 이는 영화 ‘찌라시:위험한 소문’(2월 20일 개봉, 김광식 감독) 등에 출연한 배우 최선규다. 류승룡이 “원래 주방장 어딨어!”라고 외치며 괴한을 쫓아 아파트 복도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스턴트맨이 동원됐다.

광고를 촬영한 ‘소년 프로덕션’의 소년 감독(유성재·전정욱)을 비롯해 스태프들도 대거 출연했다. “오빠, 나살찌면 프사(프로필 사진)는 어떡해?”라며 울부짖는 여인은 본래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현장에서 섭외됐다. 유성재 감독은 “1시간 반 짜리 장편영화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20분 분량의 스토리를 만들어 놓고 찍은 뒤 최종 장면들을 뽑아냈다”며 “익숙한 장면들이지만, 컨셉트가 가미되고 배치와 조합을 달리 하면서 독특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여기에 “도시는 의미 없는 전단지로 가득해요” “탕수육 하나 먹겠다고 평생 쿠폰이나 모을래?” 같은 대사는 긴박한 영상, 장중한 음악과 묘한 불일치를 이루며 웃음을 자아낸다. 앱의 기능을 소개하는 광고 본연의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도, 재치가
번득이는 대사들이다. 류승룡과 젊은 여인이 함께 누워 있는 영화 포스터 형식의 광고 카피는 “우리, 이제 어떡하죠?”가 아니라, “우리, 이제 뭘로 시키죠?”다. 클리셰적인 대사를 재치 있게 비튼 것이다.

광고주와 광고 대행사, 제작사는 애초부터 이 광고가 콘텐트로서의 매력을 지녀야 한다는 데 주안점을 뒀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회사인 ‘우아한 형제들’의 장인성 마케팅 이사는 “광고의 유머러스하고 솔직한 B급 패러디 정서가 대중에 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광고는 한국광고총연합회가 매달 선정하는 ‘이 달(9월)의 베스트 광고’에 뽑혔다. ‘러닝타임 1분 바이럴 광고의 블록버스터급 진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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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애드 방은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모델 아닌, 배우 류승룡을 담았다

광고대행사 HS애드의 방은하(44)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실제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배달의 민족’ 광고를 기획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음식 배달을 해주는 우리네 독특한 배달 문화에 착안했다는 설명이다.

-어떤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몇 해 전 제주도 인근의 섬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데, 철가방을 든 이가 통통배를 타고 와서 짜장면을 배달해줬다. 외국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자지러지더라. 우리 민족의 ‘배달 본능’을 체험한 순간이었다(웃음). 우리 민족이라면 풀밭 위는 물론, 고층 건물 꼭대기에서도 배달시켜 먹을 거라는 생각에서 ‘명화 패러디편’을 만들었다.”

-‘영화 예고편’을 기획한 계기는.

“‘명화 패러디편’의 후시 녹음을 위해 류승룡이 스튜디오에 왔는데, 후드 티에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영화 ‘표적’(4월 30일 개봉, 창감독)이 개봉할 때였다. 그 모습이 영화 포스터와 오버랩되면서, 류승룡을 광고 모델로서가 아니라 배우로서 활약하게 하는 광고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류승룡이 정색하고 하는 액션 연기에 앱의 기능을 직설적으로 풀어낸 대사가 맞물리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류승룡이 애드리브를 구사한 장면도 있나.

“전단지가 쏟아져내리는 순간, 누워 있는 류승룡이 슬쩍 한쪽 발로 반대쪽 다리를 긁는다. 재치 있는 애드리브였다. 짜장면을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광고를 하나의 작품으로 보고 촬영에 임해줬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광고 이후 광고 모델로서 류승룡의 주가도 올랐다.”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순발력 있는 연출과 애드리브가 난무한, 보기 드문 광고 촬영 현장이었다. 다음 편의 방향을 놓고 고민하고 있지만, 너무나 행복하다. 얼마 전 광고주가 우리 광고를 패러디 한 전단 광고를 찍어 보내줬다. ‘류승룡씨 때문에 살쪘다구요? 배달 음식, 이제 먹으면서 유지할 수 있습니다’란 문구의 피트니스 클럽 광고였다. 우리 광고의 반응이 이 정도구나 싶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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