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이 안내방송하느라 암초 부딪힐 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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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89호 선장이 1일 운항 도중 마이크를 잡고 안내방송을 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수영만 요트장은 2002년 아시안게임 때 만들어졌으며 국내 최대 규모입니다.” 지난 1일 오후 해운대와 광안리 앞바다를 운항하는 동백89호(32t) 유람선.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관광지를 설명하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누구나 알 법한 단조로운 내용의 안내방송은 광안대교와 동백섬 앞을 지날 때도 계속됐다.

 방송은 유람선 선장이 직접 했다. 조타실에 자리 잡은 선장은 안내방송을 하느라 키는 내버려둔 채 한 손에 마이크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음향기기를 조작하고 있었다. 방송하는 사이 선장의 손을 떠난 키는 제멋대로 돌아가곤 했다. 선장은 방송에 신경 쓰느라 전방 주시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30일 홍도 유람선 좌초 이후 안전운항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유명 관광지를 오가는 유람선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했다. 부산의 경우 해운대와 태종대, 을숙도 주변 등을 도는 유람선이 15척 운항 중이지만 사정은 동백89호와 다를 게 없었다.

 이날 동백섬 앞에서는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다. 선장이 관광지 안내에 신경 쓰는 사이 유람선이 암초가 곳곳에 널린 해안 50~60m 앞까지 접근한 것이다.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관광객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조타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 김진환(43)씨는 “선장이 자꾸 키를 놓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며 “해외 유람선도 여러 번 타봤지만 이처럼 선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는 경우는 보질 못했다”고 말했다. 비상사태에 대한 안내방송도 부실했다. 출발할 때 구명동의 위치와 입는 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만 있었을 뿐 선원의 시범이나 안내 동영상은 없었다.

 인천 월미도와 아라뱃길을 오가는 비너스유람선(414t)도 상황은 비슷했다. 배에 오르자 “1층에서 구명조끼 착용 교육을 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실제 안전교육에 참가한 승객은 절반이 채 안 됐다. 대부분 2∼3층 갑판에서 사진을 찍거나 경치를 구경하기에 바빴다. 한 승객은 “방송도 잘 들리지 않은 데다 선원들의 안내도 없어 안전교육을 하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김길수 한국해양대 교수는 “유람선 회사가 대부분 영세하다 보니 선장에게 1인 다역을 맡기고 있는 실정”이라며 “해양사고는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 쉬운 만큼 선실과 방송 담당 선원을 별도로 두고 선장은 운항에만 전념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인천 =김상진·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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