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군이 먼저 껴안아야 할 다문화가정 병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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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정용수
정치국제부문기자

“통계는 있지만 허수(虛數)일 수 있어 공개할 수 없습니다.”

 부모 또는 부부 가운데 한 명이 외국인인 다문화가정의 군 간부와 병사들 현황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들은 말이다. 국방부와 군 당국자들은 무심코 이런 말을 내뱉곤 했다. 병무청에서 넘겨받은 자료는 있으나 신뢰도가 썩 높지 않다는 뜻이다. 병무청 징병검사 때 부모님 국적을 일부러 표시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허수통계?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징병검사 대상인 다문화가정 2세는 내년 1719명이다. 2020년엔 3626명으로 증가한다. 의지만 있다면 파악이 가능한데 믿을 만한 통계조차 없다고 둘러대는 이런 현실은 다문화 장병에 대한 국방부의 무관심을 보여준다.

 그렇다 보니 뚜렷한 정책도 없다. “다문화가정 장병들도 다른 장병들과 동일하게 대하는 게 기본정책”이라거나 “본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경우 나설 예정”이라는 정도가 고작이다. 기본정책이라는 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소리다.

 국방부는 본인들이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걸 꺼리고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오히려 그들은 다문화가정 2세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힌다.

 1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다문화가정 병사 7명이 모두 그랬다. “우리 어머니는 ○○○사람이지만 나는 두말할 것 없는 한국인이며, 군 복무는 당연한 의무”라고. <중앙일보 10월 2일자 4면

 이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기 꺼릴 거라는 건 군의 편견과 선입견이다.

 다문화가정 병사 1000명 시대가 올해 열렸다. 국제결혼이 늘면서 다문화가정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수년 내 2000명, 2020년엔 3000명 시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그런데도 군의 인식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군은 무기 현대화를 통해 선진 강군을 만들겠다며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수조원을 들여 함정을 건조하고 전투기를 들여온다는 계획처럼 군의 전력증강 계획은 대부분 무기 도입에 몰려 있다. ‘하드웨어 강화’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22사단 총기 난사사건과 28사단에서 터진 윤 일병 사건을 보면 ‘소프트웨어’의 중요성도 그에 못지않음을 알 수 있다.

 군은 뒤늦게 소홀했던 소프트웨어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다문화가정 병사 문제도 병영문화의 현대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불편함이 없는지, 미처 몰랐던 차별은 없는지, 군이 해줘야 할 일은 없는지 고민했으면 한다. “본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면 나서겠다”고 할 게 아니라 먼저 군이 나서 다문화가정 병사를 껴안아야 한다.

정용수 정치국제부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