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2세 당당히 밝힌 오지수 일병 "병역의무 뿌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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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장병들은 국군 의장대라고 불러요.”

 1일 충남 계룡대 연병장에서 개최된 건군 제66주년 기념 국군의 날 행사장. 열병식이 진행되자 정연구(23) 하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정 하사의 어머니인 도미니카 출신의 카르멘 우레냐(50)씨는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라며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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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1989년 정관화(52)씨와 결혼했다. 우레냐씨는 “아들이 나에게 배우지 못한 많은 것을 군대에서 배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짙은 피부색과 뚜렷한 눈매…. 정 하사는 본인의 외모에 대해 “어머니 덕분에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한국인이 됐다”며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언제나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 하사는 “한국인으로서 겪어야 할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니 진짜 한국인이라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날 정 하사 외에도 다문화 가정 출신 병사 7명이 행사에 참석했다. 다문화 병사 1000명 시대에 맞춰 국방부가 이들과 가족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특별히 초청했다. 다문화 병사 초청은 올해가 처음이다. 이들은 “나는 두말 할 것 없는 한국인이며 군 복무는 당연한 의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다문화 가정 2세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힌다. 3월에 입대한 오지수(20) 일병은 동료들에게 먼저 “우리 어머니는 필리핀 사람”이라고 알렸다고 한다. 오 일병은 “이런 배경이 나의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오 일병의 어머니 루비 바카니(51)씨는 “처음에 군에 보내 놓고 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이 많았지만 이제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일본인 어머니와 함께 온 정우철(21) 상병도 “다문화 병사라고 해서 군에서 특별 대우도 차별 대우도 없다”고 말했다. 정 상병의 남동생 2명도 곧 입대할 예정이다.

 2010년 병역법이 개정되면서 다문화 2세의 군복무가 의무화 돼 다문화 병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듬해 이중국적이 허용된 것도 다문화 병사 증가를 도왔다.

 이달 말 동반 입대 예정인 송창훈(21)·임희준(18)씨는 일본인 어머니를 둔 이중국적자다. 임씨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입대하지 않아도 되지만 (병역을) 피하고 싶지 않다”며 “한국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0년 이후 입대하는 다문화 병사들은 외모가 도드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표가 많이 나면 대다수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입대하지 않는다. 다문화 2세와 부모들이 차별을 우려해서다. 이자스민(새누리당) 의원은 “군 생활은 다문화 2세들에게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성공적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며 “군 적응 대책을 마련하고 다문화 병사들을 활용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다문화 가정 병사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라며 “다른 장병들과 동일하게 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다문화 병사가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군 복무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병영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계룡대=김혜미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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