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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가쁜 COPD … 특수 밸브 삽입해 숨길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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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은 호흡곤란, 쌕쌕거리는 숨소리, 끊이지 않는 기침과 가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폐가 망가져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르는 병인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전문가들은 한마디로 ‘장기간 흡연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숨 못 쉬는 병’으로 표현한다.

환자의 상당수가 흡연자인 탓이다. 증상이 심하면 산소호흡기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폐기능의 절반 이상 손상되기 전까지 아무 증상이 없어 미처 깨닫지 못한다. 소리 없이 찾아오는 치명적인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짚어본다.

만성폐쇄성폐질환은 폐에 비정상적인 염증 반응이 일어나 시간이 갈수록 폐기능이 저하되고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호흡기질환이다. 국내 40대 이상 중장년층 8명 중 1명이 만성폐쇄성폐질환자다. 국내 사망원인 7위로 꼽힌다.

예전에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을 크게 폐기종과 만성기관지염으로 구분했다. 만성기관지염은 기관지에 염증이 생겨 기관지가 좁아진 것을 뜻한다. 폐기종은 기관지 아래 공기주머니(폐포)가 망가져 부풀어 올라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김호중 교수는 “최근 미국·유럽호흡기학회는 이 두 가지 질환을 하나로 합쳐 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통일해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주된 증상은 호흡곤란으로 기침·가래를 동반한다. 흔히 감기나 천식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천식은 컨디션에 따라 증상이 호전되거나 악화되는 등 변화가 있는 반면에 만성폐쇄성폐질환은 낮이든 밤이든 비슷한 증상이 꾸준히 나타난다. 감기는 기침만 발생하지만 만성폐쇄성폐질환은 기침과 호흡곤란이 함께 나타난다.

증상은 서서히 악화된다. 중장년층은 나이 탓에 숨이 차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김 교수는 “폐기능을 100점으로 봤을 때 처음에는 50점으로 떨어지면서 계단이나 산을 오를 때 숨이 차기 시작한다. 이후 평지를 걸어도(40점), 앉았다 일어나거나 화장실에만 다녀와도(30점) 헐떡거린다”고 말했다. 25점으로 떨어지면 산소호흡기를 끼고 생활해야 하며, 20점이 되면 숨이 차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15점이 되면 거의 사망한다. 김 교수는 “증상이 심하면 혼자 거동하기 힘들므로 곁에서 돌보는 사람이 항상 있어야 한다. 사회적 비용 소요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장기간 흡연이 폐를 서서히 망가뜨려

만성폐쇄성폐질환의 주된 원인은 담배다. 환자의 80~90%는 흡연자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만성폐쇄성폐질환에 대한 인식은 아직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김 교수는 “담배가 폐를 갉아먹어 폐에 구멍이 뻥뻥 뚫리고 염증이 생긴다. 장기간의 흡연으로 한번 망가진 폐는 담배를 끊어도 점점 나빠진다”고 말했다. 예컨대 20세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 50, 60대에 끊었다 하더라도 장기간 흡연한 영향으로 70대에 만성폐쇄성폐질환이 발병할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흡연자 외에도 폐수술을 받았거나 결핵·늑막염을 앓아 한쪽 폐가 없는 사람, 유전적으로 폐가 쉽게 망가지거나 분진과 같은 공해물질을 많이 마시는 사람도 주의해야 한다.

 문제는 폐가 상당 부분 망가질 때까지 증상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박혜윤 교수는 “실제 설문조사를 해보니 만성폐쇄성폐질환자의 50%는 자신이 환자인지 몰랐다”며 “자신의 폐 절반이 손상된지도 모르고 계속 담배를 피워서 증상이 급격히 악화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질환 여부는 바람을 ‘후’ 불어 폐활량을 측정하는 간단한 폐기능 검사로 알 수 있다.

보건복지부 신의료 기술로 선정

만성폐쇄성폐질환 치료의 우선순위는 역시 금연이다. 담배를 끊어야 증상이 악화하는 것을 막는다. 그 다음으로 약물치료를 시행한다. 흡입제로 좁아진 기도를 확장시키는 기관지확장제, 기도의 염증을 감소시키는 스테로이드를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증상조절·완화의 목적일 뿐, 근본 치료가 되지 못한다. 한번 손상된 폐기능은 다시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밸브를 이용한 시술이 획기적인 치료 성과로 관심을 받고 있다. 바로 ‘밸브 폐용적축소술’이다. 2013년 국내에 처음 도입됐다. 만성폐쇄성폐질환 중에서도 폐포가 망가진 폐기종 환자에게 적용한다. 박혜윤 교수는 “과거 약물치료가 불가능한 환자에겐 망가진 폐 부위를 잘라내는 폐용적축소술을 시행했다. 하지만 수술 후 결과가 그리 좋지 않다”고 말했다. 폐 이식수술은 폐를 구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수술 후 면역억제제를 평생 복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수술 5년 후 10명 중 4명은 폐가 다시 망가진다.

 반면에 밸브 폐용적축소술은 기관지 내시경을 이용해 망가진 폐기종에 특수밸브를 삽입하는 시술이다. 특수밸브가 들이마신 공기를 한 방향으로만 통하게 한다. 공기가 폐로 유입되지 않고, 폐에 남아 있던 공기만 빠져나오면서 망가진 폐기종 부위를 작게 만든다. 과다하게 부풀었던 폐포가 작아지면서 폐의 손상된 부분은 줄어들고 건강한 폐는 팽창돼 편안하게 숨쉴 수 있다.

2013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신의료 기술로 선정돼 안전성·유효성을 인정받았다. 시술 시간은 1시간 내외다. 박 교수는 “한번 넣은 밸브는 영구적이다. 시술 후 혹시라도 합병증이 생기거나 증상이 악화되면 밸브를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술 성과는 환자가 시술에 적합한 대상자인지에 따라 갈린다. 김호중 교수는 “적합한 환자가 시술을 받으면 휠체어를 타고 왔다가 걸어나가는 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전문의의 정확하고 정밀한 검사, 판단에 따라 시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밸브 폐용적축소술은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대병원, 울산대병원, 전북대병원에서 활발히 시행 중이다. 

밸브 폐용적축소술의 효과는?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이세원 교수팀이 발표한 지난해 논문을 통해 밸브 폐용적축소술의 효과가 입증됐다. 연구팀은 폐기능검사를 통해 1초간 환자가 최대한 불어낼 수 있는 공기의 양(FEV₁)을 측정했다. 그 결과 시술 후 평균 400cc(51%) 증가했으며 공기의 배출량도 늘었다. 또한 숨이 차서 걷기조차 힘들었던 환자가 6분간 최대로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측정한 결과, 시술 전 평균 195m에서 시술 후 평균 252m로 운동 능력이 향상(29.2%)된 결과를 보였다.

글=오경아 기자 ,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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