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0%와 100%는 생각의 중력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94호 29면

당첨확률이 0%인 로또는 아무도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첨확률이 0.00001%로 올라간다면 사람들은 로또를 구매할까. 일반적으로 0%와 0.00001% 간의 차이는 거의 무시해도 될 수준으로 보인다. 로또의 당첨확률(814만분의 1)을 백분율로 환산해 보면 0.00001%에 불과하다. 벼락 맞을 확률(50만분의 1)보다 낮은 당첨확률에도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나라 로또 판매금액은 매주 수백억에 이른다.

이처럼 객관적으로 실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으로 발생 가능성을 필요 이상으로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가능성 효과’라 한다. 다음을 보자.

A. 1억원을 받을 확률이 0%에서 5%로 상승.
B. 1억원을 받을 확률이 5%에서 10%로 상승.

A와 B 모두 1억원을 받을 확률이 5%포인트 높아졌다. 하지만 A의 경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운만 좋으면 1억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는 점에서 우리의 뇌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B는 1억원을 받을 확률이 수학적으로 두 배나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기대감이 곧바로 두 배로 커지진 않는다. 이처럼 객관적으로 동일한 수치의 변화라도 우리의 뇌에서 받아들이는 가중치는 기준점에 따라 다르다. 위와 유사하지만 기준점이 다른 예를 보자.

C. 1억원을 받을 확률이 90%에서 95%로 상승.
D. 1억원을 받을 확률이 95%에서 100%로 상승.

C와 D 역시 확률적 변화량은 각각 5%포인트로 동일하다. 하지만 우리의 뇌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가치는 C보다 D가 더욱 크다. C와 같이 1억원을 받을 확률이 95%수준으로 아무리 높다고 해도 운이 나쁘면 한 푼도 못 받을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반면에 D는 그러한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기 때문에 동일한 변화량이라도 우리의 뇌는 D에 더 큰 가중치를 부여한다.

이처럼 실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100% 확실하지 않다면 객관적 발생 확률보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발생 확률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확실성 효과’라 한다. 즉 가능성 효과로 인해 우리의 뇌는 실제 발생 가능성이 낮은 확률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확실성 효과로 인해 실제 발생 가능성이 높은 확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가능성 효과와 확실성 효과는 손실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다음을 보자.

E. 1억원을 잃을 확률이 0%에서 5%로 상승.
F. 1억원을 잃을 확률이 5%에서 10%로 상승
G. 1억원을 잃을 확률이 90%에서 95%로 상승
H. 1억원을 잃을 확률이 95%에서 100%로 상승

E와 F는 손실 가능성이 각각 5%포인트씩 동일하게 증가하였다. 하지만 손실 가능성이 0%인 상황에서 일단 손실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에서 우리의 뇌가 느끼는 주관적 가중치는 F에 비해 E가 더욱 크다. 마찬가지로 G와 H 모두 손실 가능성이 90%이상으로 높기는 하지만 100% 손실을 확정시킨 H의 변화에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한다.

우리의 뇌는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는 숫자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0%와 100%는 ‘확실성 선호’라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닿아 있기 때문에 이 지점의 변화에 우리의 뇌는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0%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여는 최초의 도전에 주목한다. 또한 불확실한 세상에서 100% 확실성을 보장하는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0%와 100%는 마치 우리의 뇌에 작동하는 ‘생각의 중력’과 같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