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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 하우스, 또 하나의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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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지금까지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학창시절은 물론이고 결혼 직전까지 친정 식구들과 살았다. 한때 독신주의자로 ‘싱글 라이프’가 로망이었다. 그래선지 가끔은 혼자 사는 이들이 부럽다. 인생의 모든 고통이 ‘관계’에서 나오는데 부부 관계, 부모·자식 관계, 시댁과의 관계가 없으니 얼마나 인생이 가벼울까 싶다. 물론 인생의 기쁨 또한 그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다!

 ‘싱글 패밀리’는 날로 증가 추세다. 개인주의의 확대에 요즘은 경제적 부담이 큰 이유다. 6년 뒤면 아예 대세라는 관측도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엔 1인 가구가 전체의 30%로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TV를 켠다. 일일극, 주말극에는 3대가 모여 사는 가족이 나온다. 이혼한 시누이가 같이 사는 건 물론이고 사돈까지 한집에 산다. 극적 설정에 불과하지만 너무도 비현실적인 가족 드라마다.

 반면 요즘 새롭게 눈에 띄는 건 ‘셰어 하우스(share house)’다. 주로 젊은 세대의 사랑과 세태를 그린 드라마에 등장한다. 독립적인 1인 가구들이 생활 공간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최근 대학가 등지에 새롭게 등장한 주거 형태다.

 가령 ‘괜찮아 사랑이야’(SBS)에서는 정신과 의사인 기러기 아빠(성동일)와 미혼 여성(공효진), 작가(조인성), 카페 알바생(이광수)이 함께 산다. 물론 모두 남이다. 조인성이 집 소유주이지만 주인-세입자의 수직 관계는 없다. 각자 독립 생활을 하되, 청소·세탁·취사 같은 가사노동은 당번을 정해 공평하게 나누고 함께 한다. 혈연으로 얽히지는 않았으나 같이 밥을 먹는 ‘식구(食口)’다. 전통적 가족 관계의 억압과 구속은 없고 싱글 라이프의 외로움도 덜한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가족이다. 각자 나이나 사회적 지위는 달라도 그 안에서만큼은 수평적인 관계, 친구가 되는 유사가족이다. 취업준비생들이 모여 사는 ‘잉여공주’(tvN), 대학 때 친구들이 같이 사는 ‘연애의 발견’(KBS)도 마찬가지다.

 내 친구 몇몇은 최근 은퇴 후 복잡한 도심을 떠나 모여 살자는 제안을 했다. 노후 준비의 하나로 셰어 하우스 얘기가 나온 거다. 결혼한 친구, 이혼한 친구, 아예 독신인 친구 여럿이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하긴 뜻이 맞기론 친구만한 존재가 없다. 어차피 성공적인 부부 생활의 종착점도 진짜 친구가 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듯이 말이다. 셰어 하우스가 고령자, 은퇴자의 문화를 바꿀 날도 머잖아 보인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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