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강찬수의 자연, 그 비밀] 청정지역서 왜 적조 시작? … 남해 '보돌바다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적조(赤潮)가 남해안과 동해안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7월 말 이후 두 달째 지속되고 있다. 붉게 변한 바닷물이 밀려들어 가두리양식장에서 기르던 참돔·우럭 등 물고기가 떼죽음했다.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은 긴급히 황토를 살포했고, 국립수산과학원은 적조 감시에 인공위성 정보까지 활용하고 있다.

 지난 15일 부산 기장읍 수산과학원 적조상황실. 이곳에서 만난 이창규 박사는 기상자료와 위성사진 자료 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그는 “올해는 지난해보다 2주 늦게 적조가 시작됐지만 전남 완도에서 동해안 삼척까지 발생 해역이 어느 해보다 넓다”며 “50억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적조로 인해 떼죽음 당한 물고기. [뉴시스]

 지구촌에는 300여 종의 적조 생물이 있고 국내 연안에도 70여 종이 서식한다. 하지만 유해성 적조인 코클로디니움(Cochlodinium polykrikoides)이 유독 해마다 크게 번성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김노디니움(Gymnodinium) 등이 적조를 일으켰지만 90년대 중반부터는 코클로디니움 적조가 집중 발생해 피해를 키우고 있다. 코클로디니움이 만들어 내는 점액 물질이 아가미에 붙으면 물고기는 산소를 얻을 수 없다.

 특정 적조 종이 이렇게 창궐하는 것은 미스터리다. 전문가들은 코클로디니움의 번성 원인을 ▶잡식성이란 점 ▶빠르게 헤엄치는 능력에서 찾는다. 코클로디니움은 광합성으로 영양분을 직접 생산하기도 하지만 세균 등 다른 생물을 잡아먹는 혼합영양 생물이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정해진 교수는 “코클로디니움 세포의 DNA 길이는 인간 세포의 10배나 될 정도로 유전자가 많아 다양한 환경에 잘 적응한다”고 말했다.

 다른 적조 생물이 하루 5~10m 헤엄치는 게 고작인데 코클로디니움은 하루에 30m를 헤엄칠 수 있다. 밤에는 깊은 바다로 내려가 질소·인 같은 영양염류를 흡수하고, 낮에는 태양광선이 풍부한 표층으로 올라와 광합성을 한다.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점이다.

 코클로디니움 적조가 95년 이후 거의 매년 ‘보돌바다’에서 시작되는 것도 이런 특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돌바다는 전남 고흥 나로도와 여수 낭도·개도·금오도에 둘러싸인 해역이다. 청정 바다에서 적조가 시작되는 것은 해양학자들에게도 미스터리다. 이창규 박사는 “보돌바다에서 적조가 시작되는 것은 조류와 바람이 코클로디니움을 모아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보돌바다는 남해안을 따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대마(對馬·쓰시마) 난류와 연안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서 코클로디니움 밀도가 높아지고, 여름철엔 남풍이 계속 불어 적조가 흩어지지 않게 모아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초여름 다른 적조 생물보다 코클로디니움이 먼저 번성해 적조를 일으키고, 이것이 남해안 전역으로 퍼져나간다는 게 이 박사의 가설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