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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한국사 교과서 절반 … 유 열사 내용 없어 안타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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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4종이 유관순 열사를 다루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와중에 천안에서 14년간 유관순 열사에 관한 연구와 교육,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백석대 유관순연구소는 천안의 대표 애국지사인 유관순 열사의 애국충절 정신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유관순 학교, 동상 건립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박충순 유관순연구소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충순 유관순연구소장이 천안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서 교과서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채원상 기자]

-유관순 열사는 어떤 분인가.

유관순 열사(1902∼20)는 충남 천안군 동면 용두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기독교 감리교에 입교한 개화 인사였다. 그는 재산을 털어 학교를 세우고 민족교육운동에 몸바친 계몽운동가로 유관순 열사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유관순 열사는 1918년 이화여자보통학교 고등과 1학년에 진학해 신학문을 배운 계몽운동가였다. 당시 이화학당은 ‘이문회(以文會)’라는 자치활동기구를 통해 시국 관련 토론회나 사회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시국강연회를 열었다. 유관순 열사는 학교에서 애국과 애족 정신을 키웠고, 3·1운동을 통해 자유·평등과 비폭력 박애정신을 실천한 분이다.

-유관순연구소는 어떤 취지로 만든 건가.

유관순연구소는 백석대 산하 부설 연구소다. 당시 총장이었던 장종현 박사가 2000년 10월 연구소를 설립해 소장을 역임했다. 유관순연구소는 천안의 대표적인 애국지사이자 기독교 신자인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기리고 지역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찾아내고 국민 모두에게 올바른 애국정신과 국가관, 민족관을 심어주는 것이 목적이다.

-연구소에서 이룬 성과가 많다고 들었다.

주로 연구소에선 유관순 열사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를 통해 유관순 열사의 정확한 생일과 순국일, 형량을 밝혀냈다. 호적과 경성복심법원 판결문, 수형기록표 등을 확인해 열사의 생년월일이 1902년 12월 16일임을 확인했고, 순국일이 1920년 9월 28일이라는 것도 밝혀냈다. 연구소에선 흔히 알려진 유관순 열사의 영웅적인 모습보다 유관순 열사의 고민, 성격, 일상생활 같은 인간적인 모습을 연구해 밝혀내고 있다. 공식적인 기록에 없는 사례를 발굴해 책으로 출간하기도 한다.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친구인 보각 스님과 마을 친구인 남동순 여사를 찾아가 직접 들은 이야기를 아동용 전기로 만들어 4개 국어(영어·일어·중국어·프랑스어)로 발간했다. 현재 연구소에선 유관순 연구집과 기획총서를 발간하고 있다. 또한 2009년 병천면에 아우내독립만세운동 공원을 조성하고, 2010년 천안시 쌍용동 일봉산네거리 광장에 유관순 동상을 건립하는 데 이바지했다.

-현재 유관순 열사가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누락돼 논란이 많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중 4종에서 유관순 열사가 누락됐다. 유관순 열사가 언급된 4종 중 2종에서도 도표나 사진 자료에서 가볍게 언급한 수준이다. 이런 유관순 열사의 삶이 빠진 역사 교과서를 채택한 고교가 전체의 60%다. 그중에서도 유관순 열사가 누락된 이유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친일 전력이 있던 사람들이 자기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유관순 열사를 발굴해 과장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이화여고 교장이자 친일 전력이 있던 박인덕은 이화학당 출신 학생 중 귀감이 될 만한 사람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투옥 중인 유관순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를 재조명했다는 것이다. 또한 유관순 열사에 관한 내용이 1950년대 이후부터 교과서에 실리기 시작해 북한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사실은 잘못됐다. 유관순 열사는 1948년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 1949년 6학년 교과서에 실렸다. 북한에서 유관순 열사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그분의 업적이 미미해서가 아니라 일제 치하에서 유관순 열사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말하길 꺼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유관순 열사를 여자 깡패로 폄하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현대인들은 표현의 자유와 개성을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자유는 권리다. 권리는 반드시 의무가 따라야 한다. 의무를 부정하고 자유만 주장할 때 문제가 생긴다.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논할 땐 타인의 권리나 자유를 훼손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표현하고 유관순 열사를 여자 깡패로 표현해 논란이 있었는데, 이는 올바른 역사인식과 시민의식이 배제된 사고다. 애국지사를 폄하하거나 희롱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관순 열사의 자유·평등 정신, 비폭력 박애와 애국정신은 현대인이 본받아야 할 자세다. 유관순연구소는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미래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이 존경받는 문화 민족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이은희 인턴기자 eunhee9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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