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낳고 싶어도 … 4000만원 시술비 정부지원 450만원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결혼 12년차인 이수영(가명·40·여)씨는 아이가 없다. 난임판정을 받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시험관 아기(체외수정) 시술을 10차례나 받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씨는 서울 강남 차병원 난임센터(여성의학연구소)를 찾을 때마다 길 건너편을 멍하게 바라볼 때가 많다. 난임센터에서 35m 길이 횡단보도만 건너면 차병원 산부인과가 있다. 걸어서 2분이면 닿을 거리이지만 이씨에겐 8년째 넘볼 수 없는 장벽처럼 느껴진다.

 “아이를 배 속에 품고 산부인과 쪽으로 건너가는 게 소원이에요. 난임센터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제겐 목숨보다 간절한 일인데…. 답답할 때면 건너편 산부인과에 가서 산모·신생아들을 바라보다 눈물을 쏟고는 해요.”

 이씨 같은 난임부부들은 임신에 성공해 산부인과로 옮기는 것을 ‘졸업’이라고 부른다. 이씨는 마흔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난임치료를 ‘중퇴’하고 출산을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다. 이씨처럼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통받는 난임부부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난임(불임 포함)으로 진단을 받은 환자는 2009년 17만7039명에서 지난해 20만1589명으로 늘었다.

 난임부부들의 가장 큰 고민은 시술비용이다. 이씨도 지금까지 시술비로만 약 4000만원을 썼다. 한 번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을 때마다 검사비·시술비 등으로 약 400만원씩 10번을 지출한 것이다. 임신에 좋다는 한약 등 각종 약값은 별도다. 정부로부터 150만원씩 총 450만원을 지원받았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이씨는 시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은행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201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난임진단을 받은 부부 중 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한 부부는 62.9%. 난임환자 3명 중 2명이 임신을 포기한 것이다. 이 가운데 난임치료비가 부담스러워 치료를 받지 않은 경우가 14%였다.

 우울증과 주변의 시선도 난임부부를 괴롭힌다. 보건사회연구원 황나미 연구위원이 난임여성 279명을 조사한 결과 94.5%(261명)가 우울증상을 호소했다. 결혼 8년차인 김은혜(가명·36·여)씨는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체외수정을 시도했다. 매번 300만~400만원씩 총 1500만원의 시술비가 들었다. 경제적 어려움보다 임신 실패에 따른 스트레스가 더 컸다. 김씨는 “임신에 실패한 뒤 주변에서 ‘밭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한 번 실패하고 나면 남편이나 나나 인생 끝난 폐인처럼 지낼 때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는 난임치료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대상은 전국 가구 월평균 소득의 150% 이하(2인 가구 기준 575만5000원)로 제한된다. 맞벌이부부의 경우 소득이 적은 배우자의 소득은 절반만 합산한다. 지원 횟수도 제한된다. 인공수정은 1회에 50만원까지 세 번, 체외수정은 시술방법에 따라 최대 6회 총 720만원까지 지원된다.

 하지만 턱없이 모자란다는 게 난임부부들의 하소연이다. 체외수정 진료비는 350만~600만원 수준이다. 보험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시술비가 천차만별이다.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200만원 정도를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횟수가 제한돼 있어 여러 차례 임신에 실패하면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한국난임가족연합회 홍성규 사무국장은 “난임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시도 횟수나 소득과 상관없이 아이를 원하는 부부들이 큰 부담 없이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정강현 팀장, 채승기·고석승·안효성·장혁진 기자, 고한솔(서강대)·공현정(이화여대) 인턴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