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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화요일] 정보 홍수 시대 뜨는 직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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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생각하는 컴퓨터’ 왓슨을 개발한 미국 IBM 연구소. 수학·철학·문학 등 다양한 배경의 ‘빅데이터 큐레이터’들이 모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 IBM]

“내다버릴 데이터는 단 하나도 없다.”

 내게 필요할 법한 물건을 추천해 주는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 이 기업을 세계 최고의 온라인 유통기업으로 키운 제프 베조스 최고경영자(CEO)는 데이터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빅데이터의 시대다. 데이터에 ‘크다’란 뜻의 ‘big’이 붙은 데서 알 수 있듯 빅데이터는 말 그대로 ‘대용량 데이터’를 말한다. 제조업은 불량률을 줄이고, 서비스·유통 기업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는 데 빅데이터를 활용한다. 문제는 엄청난 데이터의 홍수에서 누가 의미 있는 정보를 뽑아내는 일을 할 것인가다. 컴퓨터? 컴퓨터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컴퓨터가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을 설계하는 일은 결국 사람 몫이다.

 그래서 뜨는 직업이 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과학자)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뻘밭의 진흙 같은 대용량 데이터 속에서 가치 있는 진주(정보)를 캐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가치를 뽑아내는 안목,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이 직업을 ‘21세기의 가장 섹시한 직업’이라고 평가한 이유다. 그중에서도 데이터를 사업으로 연결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빅데이터 큐레이터’라고 부른다. 박물관·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훌륭한 안목으로 기획전을 열어 명성을 쌓듯 데이터 분석을 ‘기획’하고 그 결과를 비즈니스에 ‘활용’할 줄 아는 전략가란 뜻이다. 거의 모든 산업이 정보기술(IT)과 융합되면서 이들 데이터 전문가들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외에서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는 이들 직업에 대해 알아봤다.

 최근 1~2년 사이 국내에선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기업들이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200~300명 규모의 빅데이터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100여 명에 불과한 국내 최정예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을 상대로 금융·통신·유통·전자 등 다양한 대기업들이 모셔가기 전쟁을 벌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이제 막 빅데이터에 눈을 뜬 기업이 많아 지금도 한 달에 수차례 이직 제안을 받는다”고 귀띔했다.

 올해 초 빅데이터TF팀을 꾸린 SK텔레콤은 지난 6월 이진수 팀장을 영입했다. LG전자·삼성전자·네이버 등에서 일했던 인공지능 전문가다. 그는 SK텔레콤에서 20여 명의 빅데이터팀을 이끌며 이동통신서비스를 개선하고 신사업을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팀장은 “기존의 통계전문가들이 스냅사진처럼 특정 시점에 조사한 데이터로 현상을 분석했다면, 이제는 실시간으로 흘러나오는 데이터를 보며 변화를 추적해야 하기 때문에 더 깊은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소개했다.

 이 팀장은 “경험이나 역량에 따라 (데이터) 분석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며 “가치 있는 데이터를 알아보는 ‘감(感)’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큐레이터 자질을 강조했다. “일반 사업부서 직원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제안하고 사업화할 수 있는 기획력이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말했다.

 IT서비스기업인 LG CNS에는 200여 명 규모의 빅데이터팀이 있다. 국내 최대 규모다. 이들은 자체 빅데이터 분석팀을 갖추기 어려운 기업들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자체 신사업도 발굴한다.

 이 회사의 이대식 빅데이터분석팀장은 “통계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은 기본이고, 인공지능이나 기계학습(컴퓨터가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에 대한 이해력과 프로그래밍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석사 이상의 통계학·산업공학·컴퓨터공학·경영학 전공자가 많지만, 최근에는 인문·사회 전공자들에 대한 수요도 생기고 있다. 그만큼 다루는 데이터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단 뜻이다. 이 팀장은 의사소통 능력을 강조했다.

 그는 “최종 결정을 하는 최고위급 임원들에게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 사업 모델을 만들어 제시하고, 결과까지 예측해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인력 규모는 더 크다. 스스로 생각하는 컴퓨터 ‘왓슨’을 개발한 IBM이 대표적이다. IBM 본사 연구소에는 수학자 400명과 인문·문화·철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그룹이 있다. 이들이 왓슨을 움직인다. 왓슨이 쓸 분석 방법(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주역들이다. IBM은 우수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공급원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국 내 1000개 대학과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양성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최근에는 28개 대학에 직접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경영·수학 전공 학생들이 데이터 분석을 부전공으로 공부하는 식이다.

 국내에서도 인력 양성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부는 2017년까지 국내 최고급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현재 100명에서 1000명까지 끌어올리기로 목표를 세웠다. 현재 23개 대학(대학원 포함)이 빅데이터 관련 교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이들 대학에 실습에 필요한 데이터와 분석 기법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한국외대 최대우(통계학과) 교수는 “기존 학과들이 커리큘럼을 과감히 개편해 학생들에게 빅데이터를 다룰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며 “기업들이 채용 시 데이터 기반 사고능력을 중시한다면 자연스럽게 고급 인재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빅데이터란=통상 100TB(테라바이트, 1TB=1024GB) 이상의 거대한 데이터 집합을 의미. 데이터를 생산하는 디지털 기기가 폭발적으로 늘자, 이를 저렴하게 분석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빅데이터 산업이 뜨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빅데이터 시장이 현재 129억 달러(13조5000억원)에서 2017년 311억 달러(32조50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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