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데이터가 필요한 ‘피케티 때리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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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호 31면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를 처음 만난 건 2012년 봄이었다. 그가 보낸 e-메일을 확인하자마자 찾아갔다. 거기엔 한국의 상위 1% 소득자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연도별로 정리한 그래프가 떡하니 있었다. 국책연구원도 구할 수 없다던 바로 그 통계였다.

도대체 이 그래프를 어떻게 구했을까. 그는 연구실 한켠에 쌓아둔 두툼한 책자를 가리켰다. 국세통계연보였다.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료라서 놀랐다.

“국세청에 소득세 과세 자료 샘플을 달라고 했더니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안 된다고 거절하더라고요. 그래서 국세통계연보 속 수치를 가지고 함수식을 만들어서 빈 칸을 채워갔죠.” 꼬박 6개월을 매달려 작성했다는 엑셀표를 자랑스레 보여줬다.

김 교수는 우파 경제사학자로 분류된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진보진영의 비판을 받았다. 썩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주제에 그가 흥미를 가진 건 한국에선 미개척 분야여서라 한다. “통계청 지니계수는 설문조사 기반이어서 최상위층은 빠져 있어요. 실제보다 불평등이 덜하게 나오죠.”

그럼 왜 그동안 이런 연구가 없었을까. 그는 “복잡한 작업이라 아무도 하려고 들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2년도 더 된 일을 새삼 끄집어 낸 건 최근 출간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한국어판을 읽어서다. 20여 개국 소득집중도 통계를 바탕으로 불평등의 원인과 해법을 찾으려는 책이다. 이 책에서 피케티는 그동안 부의 분배에 관한 논쟁이 ‘데이터 없는 토론’이었다고 꼬집었다. 지니계수 같은 공식 통계에 대해선 “불평등을 종종 일부러 낙관적으로 표현한다”고 평가했다. 이전에 그런 연구가 없었던 데 대해선 “학문적으로 일종의 주인 없는 땅, 즉 경제학자엔 너무 역사적이고 역사학자엔 너무 경제적인 분야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프랑스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최근 피케티 교수 방한을 계기로 한국 경제학계에서 불평등 논쟁이 이어졌다. 연구에 오류가 있다, 불평등은 경제성장에 필수다, 처방에 현실성이 없다, 하는 반론이 만만찮다. 자본(capital)과 부(wealth)의 개념을 뒤섞어 사용한 탓에 논지 전개의 전제가 허술하다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있다. 다만 15년 간 모은 데이터로 말하는 피케티에 비해 비판론자들은 직관이나 가치 판단을 앞세우는 모습이다.

피케티는 이미 한국으로 연구 영역을 넓혔다. 김낙년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한국의 불평등 수준이 유럽·일본보다 빠르게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개정판을 낼 땐 한국 데이터를 포함시키겠다고 한다. 그때쯤엔, 피케티의 표현을 빌자면 ‘데이터 없는 비판’ 아닌 ‘데이터에 입각한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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