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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운용 결과와는 관계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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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국가채무가 67조원 증가하였고 통합재정 규모도 47조원 늘었다며 이를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의 결과로 비난하는 논리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국가채무 증가요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나 합리적 잣대에 근거하지 않은 일방적 주장으로 오히려 사실을 오도함으로써 국가재정의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최근 2년간 국가채무 증가요인을 내역별로 보면 공적자금의 국채 전환에 따라 29.4조원,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외평채 발행 증가로 30.6조원, 주택거래시 매입이 의무화되어 있는 국민주택채권 발행으로 6.7조원이 각각 늘었다. 그리고 일반회계의 세입 부족을 보전하기 위한 적자국채 발행으로 늘어난 국가채무는 5.5조원으로 국민의정부 5년간 적자국채 발행으로 늘어난 국가채무 26.4조원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가채무 증가분 70조원의 대부분인 60조원이 과거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지원된 공적자금의 국채전환과 수출호조에 따른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외평채 발행으로 비롯된 것으로 이를 방만한 재정운용에 인한 국가채무의 누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상궤를 벗어나는 주장이다.

외환위기시 국민의정부는 공적자금을 조성하여 금융시장을 성공적으로 안정시켰다. 당시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 채권을 발행하여 공적자금을 조성하였었다. 그때 발행한 채권을 2003년부터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여 대신 갚기 시작하면서 국가채무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는 과거 정부에서 지출된 공적자금을 국채로 전환하는데 불과하므로 방만한 재정운용에서 비롯된 국가채무의 확대로 볼 수는 없다.

외환시장 안정용 국채도 마찬가지다. 최근 내수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이 우리 경제의 성장을 주도하는 버팀목이 되었다. 그런데 수출증가는 외환 공급의 증가를 가져오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환율 불안정은 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외환시장 안정용 국채를 발행해 조성한 재원으로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함으로써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방지하고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따라서 외환시장 안정용 국채 발행으로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만큼 우리의 외화자산이 증가되기 때문에 향후 채무상환에는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처럼 상환용 자산을 보유한 국가채무는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귀착되는 적자성 채무와 구별해야 한다.

통합재정 규모, 즉 정부부문의 지출규모가 참여정부 2년간 47조원 확대되었다는 지적도 실제 결산기준으로 통합재정 규모가 37조원 증가하였으므로 수치상 오류가 있다. 또한 이는 경제 규모가 커지면 나라살림 규모도 커진다는 사실을 망각한 논리다. 재정규모를 단순히 금액 기준으로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 나라의 재정규모가 전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지출규모의 비율로 따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렇게 해야 국가 간의 재정규모 비교.분석이 의미를 갖게 된다. 우리의 통합재정 규모는 1998년 이후 GDP 대비 22%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또한 재정규모의 전년 대비 증가율 면에 있어서도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98년과 공적자금 상환이 본격화된 2003년을 제외하면 매년 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참여정부 들어 방만한 재정운용으로 재정규모가 급증했다는 주장은 잘못된 잣대로 사실관계를 오도하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의 비율은 2004년 말 현재 26.1%로 주요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이고, 외환보유액도 세계적 수준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이에 안주하여 재정건전성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변재진 기획예산처 재정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