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결혼하면 나라의 원가가 주나니…"|20세기 초 한국 여성잡지에 비친「여성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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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 우리나라 최초로 나온 여성지들의 영인본이 나와 개화기 여성의 의식구조와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있다. 이대한국여성연구소 (소장 김영정)가 한국여성 관계자료 집의 하나로 펴낸 『한말여성지』에는「가뎡잡지」「여자지남」「자선부인회잡지」등 한말 여성지가 영인으로 소개되어 당시 여성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가뎡잡지」는 1906년 6월에 창간호를 낸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잡지다.
신민희 소속 상동청년학원에서 열반여성, 특히 가정부인을 대상으로 계몽적이며 교과서적인 성격으로 잡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온 잡지이지만 편집구성이 가장 여성지답게 짜여 있다.
가정교육론, 몸·서양가정미담, 내외간 화목한 일, 아이 업는 해, 생선두는 법, 물을 가리는 법, 채소를 무르게 삶는 법, 찬장의 습기를 제거하는 법등 생활 상식적인 기사가 많이 눈에 띈다.『아이를 업는 것은 어린 뼈가 굽기 쉬운 고로 해롭거니와 여름에는 업히는 배와 업는 등이 서로 합하여 배에 더위가 드는지라…』『생선을 좀 두었다 먹으려거든 생선의 아가미와 창자를 내어 버리고 숯가루를 배와 입에 잔뜩 넣고 한 개씩 종이로 싸서 궤짝 같은데 두면 가하니라』등이 그것이다.
「가뎡잡지」4호에는 주시경이 조혼의 나쁜 점을 논설로 쓰고 있다.
『혼인에 마땅히 고칠 일이 많거니와 그중 폐단이 중한 것이 일찍 혼인함이니, 일찍 혼인하면 나라의 원기가 줄고 학문하는데도 해가 되나니…』로 주장하고 있다.
또 말의 폐단에 대해 쓴 것을 보면『어떤 집안에선 남녀간에 흔히 집안 허물을 남에게 말하기를 재미있고 시원한 일로 알더라. 어떤 집안에선 식구끼리 순히 할말도 역정스러운 음성으로 다투듯 하더라.
어떤 집안에선 남편 되는 이가 평생에 한번도 순하고 정답게 그 아내에게 말한 적이 없고 좋은 일에도 말할 때마다 딱딱 어르기로만 위주하더라. 어떤 집안에선 아내가 남편에게 말할 적마다 뽕뽕 쓰기만 하고 평생에 공손하고 정숙하게 말할 때는 한번도 없더라. 어떤 집안에선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여 없는 허물이라도 잡아내어 야단하다가 며느리가 아무 말이 없으면 어른말 업수이 여긴다고 야단이며 며느리가 그렇지 않다고 답하면 말대답한다고 야단이더라』등 사회 교육적인 내용도 많다.
「여자지남」은 1908년 4월에 창간호를 낸 잡지로 여자교육회의 총재였던 이옥경의 주선으로 인가를 받아 간행되었다.
「여자교육의 필요」「남녀의 동등론」「남녀동등의무」「여자의 자유」「남녀동등의 희망」등 당시까지만 해도 억압되었던 여권회복과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여자지남」취지서에는 『사람이 허다하되 반드시 어머니 생산 양육하시는 은공을 입은 연후에 비로소 있는지라…그 여자의 학식과 도덕이 있고 없는 것으로 곧 그 국가의 문명과 야만의 구별을 가히 판단할지어널·』등으로 여성교육의 시급함을 역설하고 있다.
남녀의 동등론에도 『대저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이라. 땅이 만물을 생성하는 효력이 어찌 하늘이 자강하는 공력보다 못하다하며…만일 땅이 생성하는 효과가 없으면 하늘이 어찌 하늘 이름을 얻어서 그 불식하는 권리를 어느 곳에 베풀며…」등으로 남녀의 역할은 다르지만 대우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구습을 개혁하자는 뜻으로 6조에 걸친 건의문을 내고 있다.
『제 일조는 남녀동등이 되어 내외하는 법을 폐함이 좋을 듯하오며, 제 이조는 학문을 가르칠 것이며, 제 삼조는 소년에 과부되거든 귀천을 불구하고 동등에 상처한 곳을 찾아 후실로 가게함이 좋을듯 하오며, 제 사조는 조혼법을 막음이 좋을 듯하오며, 제 오조는 정의가 불합하여 혈속을 두지 못할 지경이면 십년을 제한하여 십년이 넘은 후에 이혼하여 다시 개가케 합이 좋은듯 하오며, 제 육조는 과부든지 이부든지 조강지처가 없는데 가거든 부인으로 대접함이 좋을듯 하오이다』라고 건의하고 있다.
이밖에도 여학교 생도의 작문도 남녀평등이나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글이 많다.
같은해 8월에 창간된「자선부인회잡지」는 친일적인 성격을 띤 자선부인회의 회보다.
「자선부인회장지」는「여자지남」에 비해 여성을 위한 종합지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소설, 재미있는 이야기, 퀴즈의 성격을 띤「상 줄 문제」등이 눈에 뛴다.
「어린 아이 교육」이라는 기사는 육아 기사적인 성격을 떤 것으로『사람의 착한 마음을 기르려면 어린 아이가 물정을 모를 때부터 부모 되는 이가 착한 행실을 보이며 좋은 말을 들려서 어진 길로 인도함에 있나니…』등으로 교육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또 잉태한 부인의 조섭법, 어린아이 기르는 법 등의 생활 상식적인 기사도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질의 문답을 두어 과학적인 학문에 대한 해설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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