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창조혁신센터, 대기업·벤처의 강점을 융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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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기업-정부-벤처·중소기업이 3각 편대를 이루는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전국 17개 시·도에 들어서는 것은 새로운 실험이자 의미 있는 도전이다. 지난 20여 년간 국내에선 수많은 ‘벤처 붐’이 불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반면 미국은 벤처로 시작한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 등이 당대에 글로벌 거대기업으로 자라났다. 일본도 유니클로·소프트뱅크 등이 산업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에 비해 우리의 벤처 신화는 인터넷·게임 분야 등에 국한돼 있다.

 벤처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려면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 국내에선 그동안 벤처기업의 패자부활전 허용에만 집착해 왔다. 하지만 미국과 비교해 보면 가장 절실한 게 에인절투자와 대기업에 의한 인수합병(M&A)이다. 미 실리콘밸리에는 뛰어난 에인절투자가들이 싹수 있는 초기 벤처를 발굴해 사실상 멘토 역할을 하면서 넉넉한 자금을 공급한다. 또 미 대기업들이 성공한 벤처를 적극 인수해 도전-성공-회수-재도전의 선순환 구조를 완성한다. 이에 비해 국내 에인절투자가들은 자금 회수에만 목을 맸고, 대기업이 벤처를 인수해도 ‘경제력 집중’으로 비난받았다.

 창조경제의 창시자인 존 호킨스 박사는 “이스라엘의 벤처는 유대계 자본과 미국 시장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성공비결”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창업펀드인 요즈마 그룹의 이갈 에를리히 회장도 “한국의 문화와 경제구조가 이스라엘과 다른 만큼 자신의 강점인 글로벌 대기업을 적극 활용하라”고 권고했다. 벤처는 혁신에 강하고 한국 대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 강하다. 이런 강점들을 결합하는 게 한국형 벤처 성공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삼성·현대차·LG·SK 등이 팔을 걷어붙인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역 연고 대기업들이 멘토 역할을 하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까지 도와준다면 벤처의 성공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또한 대기업들이 성공한 벤처를 적극 인수해줘야 한국형 벤처생태계의 선순환도 빠르게 뿌리내릴 것이다. 모처럼 창조혁신센터는 제대로 방향을 잡은 시도다. 이제 재대로 된 성과가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