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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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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반전· 평화· 사랑, 어쩌구, 지금 이곳 10대들의 형들 때만해도 한바탕 시위라도 하려면 이런 간판 점도는 들고 나왔다.
그러나 최근 영국 여러 도시들을 휩쓸었던 10대들의 난동에선 그런 게 없었다. 아무런 구호도 부르짖지 않고 그저 묵묵히 경찰에 돌을 던지고, 길거리 자동차를 엎어 불을 지르고, 상점을 때려부수고 들어가 물건들을 약탈해가기도 하고, 그저 그랬다.
여기 어른들이 『참, 사람 일 알 수 없다』 고 지금까지도 입을 벌린 채로 있는 것도 당연하다. 또 요즘 10대들을 그들 형들 때보다도 더 유난히 괘씸하게 보고 있는 것도 수긍이 간다.
『난동을 부리려면 무엇 때문에 그런다는 것쯤은 분명히 밝혀야 할 것 아니냐 말이다! 』
스위스의 춰리히 시 10대들이 비슷한 난동을 부릴 때도 시 당국에다『오페라극장 같은 것 무엇 때문에 짓느냐』 하는, 그러니까 꽤 문화적인 입장이 있었다.
영국도 문화적으로 뒤지지 않는 나라일 뿐 아니라 적어도 남들은 신사의 나라쯤으로까지 여겨온 터다. 그러니까 이상에 불타있는 18대들이 상점 유리창을 부술 때는 필경 지독히 오묘한 동기나 높은 목적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알아봐라 해서 관계 당국, 신문·방송계 등 각계의 성인들이 꼬마 일로 찾아가 영문도 묻고 또 그 결과를 자신들의 언어로 대장경처럼 엮어 바깥 세상에까지도 꽤 자세히 전하기도 해왔다.
이를테면 『 「대처」 정부의 긴축경제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전에 실업홍수를 내어 소년들을 잡았다』『경찰의 과잉반응이 특히 흑인 소년들의 누적돼 온 불만을 촉발시켰다』 , 그리고 좀더 올라가선『전통적 가치와 권위들의 대치 없는 붕괴가 소년들을 정신적 폐허 속의 고아로 만들었다』 등등.
개중에는 『하도 할 일이 없이 심심해 흥분해 버렸다』 는 것도 있었다.
하도 심심해 칫과에 가서 멀쩡한 어금니 하나를 뺀 일이 내 동료 가운데에도 있었으니까 이것도 설명으로선 충분히 가능하다. 다들 일리들은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의 일품은 여기 어느 방송기자 마이크에다 대고 했던 여남은 살 난 개구장이 자신의 말이었다. 『왜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보는가』 하고 어른기자가 점잖게 물어보니까, 개구장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들은 치사하다!』
그건 런던 어느 담벼락에 누군가가 낙서 한 『우리들의 추악한 꿈속에서 네 자신의 추악한 꼴을 보라』 는 것을 짧게 한 건지 모르겠다.
하여간 영국어른들은 지금 기분이 꽤 나쁘다. 그건 꼬마들이 머리가 나빠서 이런 말을 하고있는 건지, 자기들 머리가 나빠 그 뜻이 분명치 않은 건지 그게 확실치 않아서다. <박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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