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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부자에게 징벌세를 ? 소득 양극화 해결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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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옮김, 글항아리
820쪽, 3만3000원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세계적 ‘현상’이 됐다. 경제학의 기초 지식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에겐 아무래도 어려운 책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감탄한다. 이런 반응을 낳은 근본적 요인은 사람들이 품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향수일 것이다. 비록 마르크스의 이론도 공산주의 체제도 무너졌지만, 마르크스가 추구한 평등의 꿈은 아직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다가 피케티의 책을 만나 산뜻한 꿈으로 펼쳐졌다는 얘기다.

 마르크스의 주저를 따른 제목이 가리키듯, 피케티도 마르크스와 자신 사이의 연관을 강조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의 이론엔 마르크스의 지적 유산이 예상보다 적다. 자본주의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세계관에선 마르크스를 따르지만, 방법론은 주류경제학의 그것이다. 마르크스는 재화의 값이 그것의 생산에 들어간 노동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이제는 모두 안다, 값은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43) 파리경제대 교수. 경제적 불평등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분석한 『21세기 자본』을 펴내며 단번에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떠올랐다. [사진 Emmanuelle Marchadour]

 피케티는 주류경제학의 성장 이론에 나오는 공식 셋을 가져다가 ‘자본주의의 기본법칙’들로 삼았다. 1950년대에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우가 다듬어낸 이 성장 이론은 많은 비현실적 가정들에 바탕을 둔 단순한 모형이다. 무엇보다도, 경제 성장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기업가들의 역할(entrepreneurship)이 고려되지 않았다. 이런 원시적 모형을 자본주의의 기본법칙이라고 내세운 것은 대단한 지적 모험이다.

 어쨌든, 이 세 기본법칙들로부터 피케티는 자본주의 사회들의 추세들을 도출해낸다. 그것들 가운데 중심적인 것은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어서 자본주의를 위협하리라는 전망이다. 이미 거의 모든 사회들에서 ‘소득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묘하게도, 그는 소득의 불평등이 문제인 까닭을 밝히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가난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그들의 자식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상황이 문제다. 큰 돈을 번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다. 부자들이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생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소득과 복지를 구별하는 것도 긴요하다. 사람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복지다. 소득은 복지를 위한 수단이다. 안정된 현대 사회들에선 복지의 불평등은 소득의 불평등보다 훨씬 작다. 사람이 누리는 복지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소득 양극화는 심각한 문제다. 사람의 마음은 부족을 이루어 살았던 원시 시대에 다듬어졌다. 당시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부족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였지 전반적 생활수준이 아니었다. 부족 안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좋은 배우자를 얻어서 뛰어난 자식들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부러워하는 동물’이다. 부러워하는 다수가 소득 양극화는 문제라고 여기면 문제가 된다.

 피케티의 분석에서 더욱 문제적인 것은 그가 소득 분포를 이동성(mobility)과 함께 살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소득 분포는 스냅 사진과 같아서, 한 시점에서 사람들이 올린 소득의 편차를 보여줄 뿐, 사람들이 일생 동안 소득 계층에서 이동한 상황을 보여주지 못한다.

 만일 상위 계층의 사람들이 늘 거기 머무르고 하위 계층의 사람들이 상위 계층으로 이동하지 못한다면, 상황은 무척 심각할 터이다. 근년의 연구는 이동성이 생각보다 크며 하위 계층의 소득 증가율이 상위 계층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벌 총수들도 파산한다. 반면에, 혼자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한 젊은 발명가들은 성큼 호부의 반열에 오르니,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페이스북과 같은 기업들은 모두 차고에서 시작했다.

 그처럼 사정을 누그러뜨리는 요소들을 무시한 채, 피케티는 우리의 부러워하는 천성을 근거로 부자들의 소득에 대해 징벌적 소득세를 매길 것을 주장한다. 그것이 커지는 소득 불평등에 대한 그의 처방이다.

 그처럼 파격적 처방엔 그러나 확신이 배어있지 않다. 그래서 확신과 열정이 밴 『공산당 선언』의 낭랑함이 그의 글엔 없다. 그도 이미 안다, 자신의 꿈인 평등한 세상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어쩌다 나오면 그것은 지옥으로 판명되리라는 것을, 그런 인식과 타협해서 나온 징벌적 소득세라는 부분적 처방조차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실제로 프랑스 대선에서 그가 지지한 사회당 올랑드 후보는 최고 세율 75퍼센트의 징벌적 소득세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당선되자마자, 올랑드는 기업들의 조세 부담을 줄이는 일련의 조치를 발표했다.

 피케티는 떠도는 기사(knight errant)다. 이미 오래전에 창백해진 꿈을 좇아서 부러진 창과 쭈그러진 방패를 들고 지친 말을 모는 기사다. 300년에 걸친 자료들을 모아 통계 처리를 해서 자신의 이론을 떠받치려 애쓴 그의 모습에서 내가 받는 심상은 그것이다. 아마도 그런 애잔한 심상이 많은 비판자들로 하여금 비판에 앞서 그의 학문적 노고에 경의를 표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

복거일은 소설가·사회평론가·경제칼럼니스트. 1946년 충남 아산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은행 등에서 일하다 87년 장편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로 문단 데뷔. 시집 『오장원(五丈原)의 가을』, 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 사회평론집 『현실과 지향』 등.

[S BOX] 피케티가 불지핀 불평등 논쟁 … 출판가도 후끈

『21세기 자본』은 20여 개 국가의 300년간 경제 지표와 소득 자료를 분석해 불평등의 원천을 파헤친다. 핵심은 자본수익률 증가 속도가 경제성장률 증가보다 빠르기 때문에, 즉 돈이 돈을 버는 구조로 인해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 책이 미국에 소개되면서 폴 크루그먼·그레고리 맨큐 등 저명 경제학자들의 찬반 논쟁이 거세게 일었다.

 한국어판 출간과 함께 국내에서도 불평등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불붙을 전망이다. 관련 도서도 속속 나오고 있다.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의 『위대한 탈출』(한국경제신문)은 자본주의로 인해 세계가 빈곤·보건·교육 등 모든 부문에서 의미 있는 진보를 이뤘다고 주장한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 읽기』(백년동안)는 국내학자 7명의 비판을 담았다.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책 속 수학 공식의 오류를 지적했고,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균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장의 엔진을 제거하는 것”이라 반박했다.

 22일 발간 예정인 『피케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바다출판사)는 김공회·이정구 등 진보적 성향의 젊은 사회과학자들이 마르크스 경제학의 입장에서 피케티 이론을 파헤친다.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대책이 자본과세 강화를 골자로 한 세제 개혁이라는 피케티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단순히 양극화 심화로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구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보다 급진화된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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