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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공사·합작기업 이모저모를 알아봅시다|은행서 식당까지 외국자본 러시|천 20개 업체 작년 외형 9조 여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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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합작 은행뿐 아니라 합작 식당까지 생긴다고 한다. 호텔 하나 짓는 것도 매판자본의 앞잡이라고 몰아 붙이던 때에 견주면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달라졌다.
공과가 어찌 되었든 간에 외국기업들의 투자활동은 이제 우리경제의 떼어낼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더 그릴 전망이다.
작년 말 현재 우리 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상사 및 지사는 2백63개. 여기에 합작 투자한 회사 7백57개까지 합치면 모두 1천20개의 기업이 외국기업의 입김을 쐬고 있는 셈이다.
지난 한해 동안 2백63개 외국인 강사(지사포함)가 올린 외형은 1조 6천 6백억 원으로 세금 낸 것만 따져도 3백 11억원에 달한다.
합작기업까지 합친 의형은 무려 9조3백94억원, 이렇게 따지면 우리 나라 전체기업 외형의 15%정도가 직접이든 간접이든 주한외국인들의 손길을 거치고 있다 해도 달리 할말이 없다.
업종별로 따져도 이젠 외국인 투자의 손길이 안 미치는 분야가 거의 없을 정도다.
최근 들어 가장 두드려지는 쪽은 역시 기술과 자본이 달리는 중화학공업분야. 전기 및 전자에 1백92건, 기계와 금속에 1백 89건 등 지금까지 전체 합작 투자의 30% 가까이가 이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떠맡았던 웨스팅하우스는 서울지사를 아예 뉴 클리어코리아라는 현지법인으로 바꿔 본격적인 영업활동을 개시했고 세계최대의 광업회사로 손꼽히는 미 아막스사는 태백산맥의 몰리브덴 광맥개발에 참여하기 위해 현대와의 합작진출을 곧 매듭지을 건망이다.
소소한 기술제휴는 말할 것도 없고 정밀기술의 첨단인 반도체를 비롯해 합작투자의 종착역이라고 일컬어지는 에너지·자원부문에까지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한 손에는 자본을 다른 한 손엔 기술을 움켜쥐고 있는 이들 외국인 상두들의 영향력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막강하다.
합작기업의 경우 보통 사장자리는 한국사람에게 비워주고 부사장으로 앉아있지만 진짜 사장노릇은 혼자서 다한다.
걸프가 유공을 떠나가기 전에 결산방법을 바꿔 말썽을 빚었던 것도 걸프 측 부사자의 메모 한 장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이럴 경우 사장 질에서는 알아도 모르는 체하는 것이 장례로 통한다.
그런가 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 자금난이 심한 나머지 모자동차회사는 종업원들의 봉급지불을 미루고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합작선 GM측은 자기네의 세계적인 명성을 훼손시키는 일이라며 즉시 봉급지불을 요구해 종업원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었다.
유명호텔의 경우는 합작 지분이 얼마이건 간에 철저하게 외국식으로 경영된다.
호텔경영의 총사령관 격인 총지배인 자리는 예외 없이 외국 전문가를 모셔다 놓고 모든 실무적인 지시에 따른다.
실제 외국인 자본이 직접 들어와 있는 곳은 조선과 플라자호텔밖에 없으나 세라튼· 하이야트 등도 이름 사용료를 물어 가면서 주요 직책들을 모두 이들에게 맡겨놓고 있다.
호텔 신라 역시 일본 오오꾸라 호텔로부터 경영자문을 얻고있다.
외국인 상사의 가장 대표 격인 곳은 역시 외국은행의 지점들이다. 철저한 능률주의 속에 출입구에서부터 완전히 이국적인 분위기다.
무턱대고 봉급 많이 주는 곳으로 소문난 때도 있었지만 이젠 그렇지도 않다. 일부 은행은 시중은행 지점수준에 불과한 경우도 없지 않다.
그들의 연공서열이라는 것이 안 통한다. 봉급 인상 시에도 물가상승을 감안해 일정률을 똑같이 올려주는 이외에 성과급이 별도로 지급된다. 쉰살 먹은 평 행원도 있다.
모든 일의 평가기준은 희사의 이익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도 따진다. 컴퓨터 회사 IBM의 지사 직원들은 앞 친구의 봉급이 얼 만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입사경력이 2년 짜리 가 8년 짜리 보다 많이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입을 다문다.
외국인상사의 국내 지점 중에는 사무실 l개에 2, 3명이 나와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직접 장사하는 것보다도 시장조사와 정보수집이 더 중요한 임무다.
그러기는 덩치 큰 외국은 지점들도 마찬가지다. 무슨 정치적인 사건이나 대기업부도라도 터질 경우 부지런히 진상을 파악해서 본사에 알려야한다.
이때가 한국인종업원으로서 가장 고민스러울 때다. 소속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는 국내기업의 비위를 일일이 고해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장사에서 근무하는 우리 나라 종업원들의 근본적인 불안은 승진문제로 귀착된다. 아예 외국인상사를 선택할 때부터 다소 풍족한 보수를 받는 대가로 승진이나 사회적인 명예 따위는 간단히 포기해 버렸다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많다. 중소규모의 외국인상사일수록 승진의 애로는 더 심하다.
최근 들어서는 대기업의 경우 이 같은 인사문체가 외국기업 자신에게도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선지 조금씩 승진의 기회가 넓어지고 있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능력만 인정되면 오히려 현지출신이 더 효과적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다.
외국 은행지점의 경우 부 지점장까지 올라가는 것은 거의 기정 사실화되었고 크로커내셔널 은행의 양호씨, 노바스코셔 은행의 진종식씨 등은 한국인으로서 지점장으로 승진된 케이스들이다.
그밖에 미 둘랜드 은행이나 뱀커스트러스트 은행 등은 미국계 한국인에게 지점장을 맡겨놓고 있다.
또 GM측은 새한 자동차의 자기네 측 대표에 서정동씨를 앉혀놓았으며 웨스팅하우스의 뉴 클리어 코리아의 사장은 임명재씨가, 유니언 가스의 사장에는 배준호씨 (전 유공수석부사장), 펩시콜라는 펩시 측이 선정한 영업담당이사에는 김동수씨 등이 각각 자리잡고 있다.
우리 나라를 시장으로 그들은 해마다 적지 않은 돈을 벌어서 가져간다. 65년 이후 투자한 돈에 대한 배당금을 받아 송금한 것만 따져도 3억3천만달러에 달한다. 물건 갖다 팔고 봉급 타 가는 것 등은 모조리 빼고 말이다.
그렇다고 미워할 수만 없는 것이 외국인상사다. 달러는 모자라고 개발은 서둘러야겠고 이런 형편에서는 그들의 비중은 더 커져나갈 수밖에 없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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