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세무공무원 낀 카드깡 일당 붙잡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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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위장가맹점을 개설해 1500억원대 규모의 ‘카드깡’을 벌인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또 세무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이들을 도운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노숙자 명의로 신용카드 가맹점을 연 뒤 수도권 일대 유흥주점 등에 위장 단말기를 설치해 세금을 감면해주고 9%~15% 상당의 수수료를 받아온 혐의로 카드깡(신용카드 위장거래) 업자 정모(44)씨 등 일당 20명 검거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과정에서 카드깡 조직의 불법 영업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전ㆍ현직 세무공무원 7명도 함께 적발됐다. 이들 세무공무원 중 최모(40)씨는 매달 300만원씩 모두 8150만원의 금품을 받고 카드깡 일당에 단속계획서 등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됐고 나머지 공무원들은 불구속 입건됐다.

정씨 등은 유흥업소들이 최대 38%의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다는 점에 착안, 2010년 2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위장 카드가맹점을 운영해 1582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수수료 명목으로 200여억 원을 챙긴 혐의다. 경찰 조사 결과 정씨는 노숙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 170여 명을 모집한 뒤 이들 명의로 사업자등록증, 영업허가증 등을 위조해 수도권 일대에 위장 카드가맹점 1900여 곳을 개설해 카드깡을 해왔다.

최씨 등 세무공무원들은 정씨 일당을 단속하고도 이를 무마하거나 단속정보를 미리 제공해왔다고 경찰은 말했다. 이들은 위장가맹점을 적발해 상부에 보고하더라도 실제 수사기관에는 고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1건당 100만원씩 받아 챙기기도 했는 것이다. 하루 매출액 등을 토대로 위장 가맹점을 찾아내는 국세청의 조기경보시스템이 있었지만 단속 공무원들의 비위로 결국 무용지물이었다. 경찰은 이렇게 탈세된 규모가 최대 6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 일당은 위장 가맹점이 적발되면 곧바로 다른 명의로 가맹점을 등록해 영업을 계속 했다"며 “가맹점을 개설할 때 카드사에서도 해당 업소를 직접 확인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국세청에 매출을 숨긴 해당 유흥업소를 통보하고 정씨 등의 추가 범행 여부를 수사 중이다.

고석승 기자 goko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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