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외국인 감독 바람, 트렌드가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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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슈틸리케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이 'A대표팀 뿐만 아니라 한국 유소년축구와 여자축구 전반에 관련된 일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한 게 높은 점수를 얻은 배경이다" -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단기적인 성적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발전 방안도 강구하겠다. 성적을 내기 위해 선수 구성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팀의 구조적인 부분들을 잘 만들어 장기적인 경쟁력도 고려하겠다." - 마틴 레니 서울 이랜드 감독

한국 축구에 또 한 번 외국인 감독 바람이 분다. 해외 무대에서 실력을 검증 받은 지도자들을 데려와 신속한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다. 기준과 흐름은 과거와 달라졌다. 성적 등 단기간의 성과 뿐만 아니라 팀의 장기적인 비전까지 고려하는 게 새로운 추세다.

내년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참가를 목표로 창단을 준비 중인 기업형 구단 서울 이랜드 FC는 11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초대 감독 마틴 레니(40)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레니 감독은 장·단기 비전을 함께 밝혔다. "K리그의 경쟁력 있는 구단들과 함께 하게 돼 영광스럽다. 성적 뿐만 아니라 마케팅, 유소년 육성 등도 아우르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구단 관계자는 "레니 감독은 2007년 미국에서 클리블랜드 시티스타즈(2부리그) 창단 감독으로서 단기간에 팀을 리그 최상위권에 올려놓은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체계적인 유소년팀 구축을 이끌며 중장기적인 비전도 신경 썼다. 창단 준비 중인 서울 이랜드에 최적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대표팀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A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60) 감독 선임 과정에도 '장기적 비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슈틸리케 감독이 마지막 외국인 감독이 되길 바란다. 한국 축구가 그의 지도 노하우 뿐만 아니라 긴 호흡의 대표팀 운영 전략까지 적극적으로 흡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둔 이후 한때 한국축구에 외국인 감독 바람이 불었다. 터키 출신의 명장 세뇰 귀네슈 감독(서울),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포항) 등 성공사례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한국축구 특유의 문화와 경기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해 실패했다. '한국형 지도자'로 평가받는 귀네슈·파리아스 등도 클럽 A팀 성적에 몰두했을 뿐, 해외 선진축구를 K리그에 이식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레니·슈틸리케 등 최근 한국축구와 손잡은 외국인 지도자들의 선임 트렌드는 확연히 다르다. 두 지도자 모두 지도범위가 A팀에 그치지 않고 성인팀에서부터 유소년팀에 이르는 클럽 내 수직계열 시스템을 모두 관장할 수 있다. A팀의 전술을 유소년팀까지 공유한다는 점에서 '헤드코치(head coach)'의 개념을 뛰어넘어 실질적으로 '매니저(manager)'의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들이다.

이는 한국축구가 동경하는 'FC 바르셀로나식 축구'에 다가서기 위한 실질적 진일보로 평가받는다. 이제껏 한국에서 '바르셀로나 축구'의 핵심 키워드는 '티키타카(탁구를 치듯 짧은 패스 위주로 진행하는 경기 스타일)'였다. 숏패스로 이뤄지는 수준 높은 경기력에 열광했지만, 그런 플레이가 가능한 이유까지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국내 바르셀로나 축구학교 운영을 총괄하는 김영진 코리아이엠지 대표는 "바르셀로나가 티키타카를 매끄럽게 구사하는 이유는 최고의 선수들이 호흡을 맞추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소년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전술과 훈련 방식을 공유하는 게 진정한 비결"이라면서 "장기적인 비전은 결코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지지 않는다. 눈 앞의 성적에 급급하던 한국 축구가 먼 미래까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긍정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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