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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많지만 결국은 "잿밥 다툼"|구속 사태로 번진 불국사·월정사의 주지 분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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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불교 조계종의 불국사와 월정사 「주지 분쟁」은 검찰의 주동자 구속과 관계 당국의 막후 설득 등으로 수습의 실마리를 풀어 가고 있다. 「잿밥 싸움」으로 비판받아 온 불국사와 월정사의 주지 자리다툼은 당국이 손댔던 10·27 불교계 정화 작업 이후 불가 사부대중 (남승·여승·남 신도·여 신도)을 다시 한번 욕되게 한 것이 사실이며 발령 경합-폭력 대결-법정 시비-당국의 조사-비방 성명전-구속 사태 등으로 이어진 분규 양상은 마치 50년대말·비구·대처승간의 분규를 방불케 했다. 탐·진·치의 삼독을 버리라는 부처님의 기본적인 가르침조차를 망각한 채 이해에 집착한 것은 아닌지?

<다툼의 배경>
이들 사찰의 주지 다툼은 우선 세속적으로 볼 때 막대한 사찰 관람료 수입 등을 둘러싼 물질적인 이권 쟁탈전이라고 볼 수 있다. 「잿밥」에 대한 스님들의 탐욕은 주지 분쟁이 유독 사찰 재산이나 불전·관람료 수입 등이 좋은 대찰과 관광 사찰 등에 집중되고, 심산유곡의 별 볼일 없는 암자 등은 주지 발령을 받아도 명의만 걸어 놓고 입주치 않아 퇴락 돼 가는 예가 허다한데서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불국사의 경우 연 관람료 수입만도 7억원 (석굴암 포함)에 이르고 있는 국내 최대의 노른자위 관광 사찰-.
월정사의 경우는 일제 시대의 고승이었던 방한암 스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사찰 고유의 법통 사수 문제 등이 부각돼 있기도 하다.
다음으로는 사찰을 적어도 종단 소속의 공유 시설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중 또는 개인의 소유 물건 하는 폐습이 팽배 한데서 사찰 분규는 점점 첨예화 돼 가고 있다.
더우기 이같은 풍조는 사찰의 관리권을 갖는 주지직을 불가 고유의 「사자 상승」이라는 전통을 빗대 후임 주지직을 상좌에게 물려주는 세습화 경향까지 띠고 있다. 원래 사자 상승이란 스승 스님의 법통을 법제자가 이어받아 간직하며 은사의 개인 소장품 등을 물려받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 주지직을 상속하는 뜻은 없는 것이다.
세째 대찰의 주지직은 곧 종권 장악이나 그 유지와 밀접한 함수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종권=주지직 장악이라는 역작용은 20년 동안 거의 끊길 날이 없던 수많은 종단 내분 속에서 그 실체를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네째 현 종권의 핵심 세력으로 알려진 사두마차 (정초우 총무원장·서의현 종회 의장·황진경·서벽파 스님)의 이해가 엇갈리고 있는 점을 지적 할 수 있다.
끝으로 형식상으로만 근대화된 중앙 집권제의 종단 조직이 아직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전근대적인 사찰 제도의 저항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종헌상 총무원장의 임명 사항인 본사 주지 인사 제도가 제도적 조직이 없던 옛날의 산중 회의의 주지 선출, 일제시대의 교구본산제 풍습 등과 아직도 일부에서 마찰을 빚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분쟁 당사자들은 서로 유리한 쪽의 제도나 전통을 앞세워 대립한다.

<특징 및 경과>
이번 두 대찰의 주지 다툼은 한마디로 종권 다툼의 이면에서 불타던 주지 싸움이 표면에 분출돼 오히려 종권 차원보다 위에서는 중대 현안 문제였다는 점을 그 특징으로 지적 할 수 있다.
특히 불국사 주지 문제는 78년부터 3년여 동안 계속돼 온 개운사측 (종회)과 조계사측 (총무원)간의 종권 다툼에 막강한 역작용을 해 왔고 지난 5월에는 정화 후 처음 발족한 이성수 총무원장 체제를 무너뜨린 종회의 총무원장 부신임 결의를 야기 시킨 중요한 원인의 하나였다.
두 사찰의 주지 분쟁은 전주지인 최월산·김탄허 스님 대 새 주지 발령을 받은 김월서·김능혜 스님간의 대결로 압축된다.
지난 1월 정화의 유산을 안고 출범한 이성수 총무원장 집행부는 개정 종헌에 「주지 정년제」 (본사 주지 65세 이하)를 신설함으로써 불국사·월정사의 두 원로 주지는 제도적으로 퇴진이 불가피하게 됐고 내연하던 후계 주지 임명 문제가 조계 종단의 최대 현안 문제로 부각돼 요동하기 시작했다.
불국사 주지는 3월초 사표를 낸 월산 전주지의 사제인 월서 스님과 상좌인 이성타·김종원 스님 등이 치열한 임명 경합을 벌였고 서로가 상대방 인신 공격까지 서슴지 않은 추태를 벌였다. 전주지가 미는 상좌 측을 주지로 임명하려던 총무원은 인사 위원회 (종회축)와 재야 측의 반대에 부닥쳐 지연 전술을 벌이다가 급기야는 불신임을 받고 불명예스럽게 종권까지 내놓는 결과를 빚었다.
이 총무원장의 불신임에 재야 세력으로 공을 세운 월서 스님과 능혜 스님은 정초우 총무원장을 비롯한 사두마차가 종권을 장악함으로써 소망의 불국사·월정사 주지직을 임명받는데 성공했다.
전 주지 측은 총무원의 주지 발령을 전면 거부 한 채 인계 인수에 응하지 않았고 총무원 측과 합세한 신임 주지 측에 신도들까지 합세된 폭력 저지와 주지 직무 집행 가처분 신청, 비방 유인물 등을 만들어 뿌리면서 신임 주지의 부임을 저지했다.
양측의 비방은 서로가 은처승 (내연 관계의 부인을 가진 스님)이라고 공박하는가 하면, 과거의 부정 사례, 호적 관계 등까지 들추어내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전 주지측 가처분 신청이 대구 지법 경주 지원에서 기각 당하고 신임 월서 주지의 관등록 (도)이 이루어짐으로써 물리적 대결을 누그러뜨렸다.
월정사는 폭력 대결에 이어 법정 시비에 들어갔고 급기야 검찰의 주동 승려 구속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문공부 당국은 최근 종단 측에 2차에 걸친 강력한 경고를 하면서 조속한 사태 수습을 촉구했다.

<주지 인사 관례>
현행 조계종 종헌·종법상 본사 주지 인사는 총무원장이 임명, 인사 위원회 (위원 5명)의 심의를 거쳐 발령하도록 돼 있다. 자격은 자연 연령 40세 이상, 법납 (승려 경력) 20년 이상-.
10·27 정화 이전의 주지 인사는 총무원장의 임명, 발령으로 모든 절차를 끝냈고 주지 정년제라는 것이 없어 자연 연령의 상한선이 없었다.
종회 의원들로 구성된 인사 위원회의 심의는 자격 요건 등의 법적인 하자 여부를 심사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불국사의 경우 전 주지측 추천의 성타 스님은 인사위 심의에서 4개월이 모자라는 40세 연령 미달 지적으로 실패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종권의 핵심을 이루는 본사 주지 인사권은 모든 본사 주지를 총무원장의 재량만으로 임명하는 현실은 아니다.
현재 소위 삼보 사찰이라는 통도사 (불보), 해인사 (법보), 송광사 (승보) 등의 주지는 전혀 총무원의 인사권이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 사찰측의 교구내 본말서 주지 회의나 문중 회의 등에서 품신 하는 승려를 형식상으로만 임명, 발령하는 실정이다.
이밖에 문중 사찰로 굳어졌거나 불사의 공덕주로 추앙되는 스님이 주지직을 맡고 있는 백양사·직지사 등과 같은 본사도 총무원 인사권이 사실상 무력하다.
해방 이후 근대적 조직이 있기 전에는 산중 회의라는 것을 열어 극히 민주적으로 주지를 선출하는 전통이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일 제때에서는 교구 본산 제로 교구 내의 사암 주지는 본사 주지가 임명했고 본사 주지는 제방 대중의 뜻을 따라 승계해 나갔다.
현재도 말사 주지 임명은 본사 주지의 추천, 품신으로 총무원장이 임명하고 있다.
근래에도 간혹 본사 주지를 문중 회의 등에서 선출하는 예가 있는 것은 과거 산중 회의와도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번 주지 분규가 야기된 불국사·월정사의 주지 임명 절차는 그 내면에 깔린 어두운 면들을 덮어둔다면 형식상으로나 법적 요건으로나 하등의 흠이 없는 인사였다고 볼 수 있다.
인사를 법령의 자구대로만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두 사찰의 주지 임명은 종헌·종법상의 하자는 없다.

<개선 방향>
불국사·월정사 주지 분규는 부끄럽게도 타력 적인 정화의 호된 시련을 겪고도 승단의 의식 구조나 작태가 달라진게 없이 구태의연하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조계 종단의 고질적인 분규나 폐습을 없애기 위해서는 제도의 정착이 우선돼야 할 것 같다.
승단도 결국은 세속적 한 부분이라면 「조직의 질서」와 나름대로의 법령을 준수하는 집단 의도가 확립 돼야 한다. 어느 일방에 불만스러운 인사였더라도 일단 결정적인 흠이 없는 조직의 명령이라면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다음 기회를 기다려 교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음은 승려 자질 향상을 위한 철저한 재교육 실시다.
새로 불가에 입문하는 승려는 엄격한 자격 조건을 두어 학력·출신 배경 등을 철저히 규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또 원로와 중진·소장간의 세대 교체를 위한 「통로」를 하나의 전통으로 굳혀야 한다. 바깥 세상으로부터 통풍되는 시대적 사조를 다소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백가지 계율을 지켜야 하는 등의 전시대적인 복잡한 「구속」도 현실화해 독신인 비구의 특수한 스트레스를 풀어 줄 수 있는 「계율의 근대화」 혁명이 요망된다.
지켜지지도 않는 낡은 계율에 얽매여 있는 것은 불교 발전의 저해 요인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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