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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쇄신」서 「깨끗한 정부」로 이어진|부패추방운동의 어제와 오늘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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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문제돼 본격적인 추방운동이 시작된 것은 70년대에 들어서다. 74년 초에 단행된 부처별 공무원 숙정, 75년에 시작된 서정쇄신, 77년의 2차 숙정, 80년 5·17이후의 정화와 최근의 청탁배격·깨끗한 정부운동 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공직사회의 부조리 제거를 위한 노력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아직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공직 사회의 부패가 사라지려면 지도층의 솔선수범, 부상에 대한 엄격한 처벌, 적정한 보수 등 여러 여건이 갖춰 줘야 한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도둑촌·호화주택부터 말썽>
○…공무원부패추방운동은 그때마다 서정쇄신, 부조리추방, 사회정화, 청탁배격 깨끗한 정부 등의 슬로건으로 표현했다.
71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호화주택·도둑촌 등으로 부패가 사회문제화하자 당시 박정희대통령은 서정 쇄신을 강조했다.
그후 75년 월남패망과 합께 서정쇄신이 국가 안보적 차원으로 취급되면서 박대통령은 부조리추방을 내걸었다.
서정쇄신과 부조리 척결로 표현된 70년대의 부패추방 운동 중에는 두 차례의 공무원기정이 있었다.
74년 4월의 1차 숙정에선 3백31명의 공무원이 물러났는데 이중 2급 을(현재의 3급)이상 고위공무원은 52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77년 3월의 2차 숙정에서는 4백20명이 공직을 떠났다.
75년 3월 서정쇄신운동이 강화되면서 그 해의 공무원 징계건수가 1만6백62건이 돼 해방 후 처음으로 1만 건을 돌파했다. 다음해인 76년에는 무려 50%가 늘어난 1만5천2백97건이 되었다.
그래도 공무원 비위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상급자의 연대책임제, 뇌물을 제공한 민간인에 대한 쌍별죄, 상별기록부 작성 등 각종 처방이 나놨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과정에서 지난 77년 박대통령의 지시로 만든 상별기록부에는 총1천2백29명의 포상자와 1천3백63명의 비위자가 등재됐다.
그중 포상자는 78·5%가 3급을(현재5급)이상의 고위공무원인 반면 비위자는 85·2%가 4급 갑(현재6급)이하의 하급공무원으로 대조를 이뤘다.「영광은 위로, 문책은 아래로」라고 나 할까. 그나마 이 제도는 10·26이후 지시자가 사라지자 흐지부지되어 지금은 거의 사문화하다시피 됐다.
80년 5·17후 국보위의 정화작업에서는 장·차관급 38명을 포함해 8천8백77명이 공직을 물러났다.

<코피대신 옥수수차도 등장>
○…지난 1년 동안 사회정화위의 설립과 함께 사회정화, 청탁배격, 질서생활화운동이 벌어졌고 최근에는「깨끗한 정부」를 위한 다방면적인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그래서 공무원들의 거동이 한결 조심스러워졌다.
어떤 사무실에서는 접대용 코피가 옥수수차나 엽차로 대체되는가 하면 접대용 담배도 하급담배로 바뀌었다.
좋은 자리에만 관심을 쏟던 분위기가 변해 연수원 등 아예 한직을 자원하는 사람도 나온다.
보통때면 하루 1천5백 여명 정도가 이용하던 중앙청후생관 구내식당이 외식하는 사람들이 적어져 시차제 점심을 고려할 정도로 붐빈다.
청탁배격운동이 한참일 때는 공무원들이 꼭 만나야할 의부사람조차 기피하는 경향도 보였다. 건설부 직원이 건설업자를, 재무부 직원이 은행관계자들을 피하고 남의 눈치 때문에 전화로 하거나 그것조차도 부하직원에게 미뤄버리는 풍조가 많았다.
○…관계에 한화바람이 불때마다 덩달아 어는 곳이 경제계. 공무원 부조리의 다른 한끝이 경제계이기 때문에 일단 건정 선풍이 불면 경제계도 잠복기에 들어간다. 그러나 경제활동을 하려면 대관청 접촉이 필수적이다.
각종 인허가가 관청에 집중되어있고 관청의 판단에 따라 장사의 부심이 결정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 경제계의 얘기다.
최근 들어 단속이 강화되자 공무원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물론 대민 접촉을 활발히 하여 정당한 민원이면 해결해 주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이렇게 바람불면 몸조심하는 게 제일이란 생각들이 체질화되어 무척 소극적이 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청탁이고 어디까지가 정당한 민원인지 확연히 구별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섣불리 만나거나 민원을 처리하여 오해를 받기보다 일 안하고 잘못도 안 저지르고 오해도 안 받으려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선거구민의 민원사항 줄어>
○…청탁배격 운동 후에는 국회의원을 찾아오는 선거구 손님이나 민원사항도 상당히 줄었다.
김현규의원(민한) 은 의원회관이나 집으로 찾아오는 선거구민이 10대 때에 비해 절반정도로 줄어들었으나 취직 부탁과 지역구 숙원 사업만은 여전하다고 했다.
권정달 민정당 사무총장의 당사 사무실 앞에는 「청탁배격」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그래서 일부 머리가 비상한(?) 인사들이 서울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지방선거구민에게 부탁하여 거꾸로 지방에서 올라오도록 만든다.
그러나 민정당의 경우는 선거구사업도 개별행동이 일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비상한 머리도 별무효과가 되고 만다는 얘기다.
의원들 중에는 청탁 행위와 지역구사업은 엄연히 구별되는 만큼 예산편성이 한참인 요즘 경제기획원이나 관계부처를 찾아다니며 지역구숙원사업을 꼭 예산에 반영토록 뛰어다니지 않을 수 없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의원에 주유권 발급 연구 중>
○…공직자의 부정을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운동과 단속 못지 않게 공무원이 간여하는 행정영역을 축소하는 제도개선과 공무원의 보수현실화가 필요하다.
지난해 총리실의 한 관리가 5백70명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시행한 앙케트조사에 의하면 부조리요인으로 비현실적인 처우라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42%로 가장 많았다.
정부로서도 현실적인 처우개선 없이 규제만으로 부패가 근절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처우개선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4급 (3갑) 이상 공무원에 대한 정보 및 판공비 지급, 10년 이상 근속자에 대한 주택자금융자, 연금보점·대학생 학비 등 각종 융자, 중·고생자녀 학자금 지급 등이 모두 처우방안으로 안출된 것이다.
이런 처우개선방안은 씀씀이가 클 수밖에 없는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도 검토되고 있다.
그 방안으로 과중한 휘발유값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의 차관에게 지급하는 하루 8ℓ의 휘발유 주유권과 지구당에 둘 수 있는 비서관 1명 증원 및 체신요금의 경감 등 몇 가지 방안이 국회사무처에 의해 연구중이다.
또 부정부패를 막는 제도적 뒷받침으르 이미 고위공직자에 대한 재산등록을 주요 내용으로한 공직자윤리법안이 국회에 제안되어 있으며 이를 싱가포르의「부패 방지법」같은 차원으로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 4월 국가공무원법 개정 때 청렴도 조항을 따로 신실해 공무원의 승진·보직에 참고토록 의무화시킨 것이나 총리령으로 감독자에 대한 연대책임을 제도화 한 것도 일련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이와 병행해 공직에 대한공무원들의 가치관을 재정립해야한다는 소리가 높다. 공무에 사적인 동기가 착색되어서는 전체가 비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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