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이것이 2014년의 홍콩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광둥성 선전에서 걸어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홍콩이다. 다리 양쪽에 있는 중국과 홍콩의 출입경 관리소에서 방문객들은 여권을 내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얼마전 목격한 풍경은 흥미로웠다. 길게 줄을 선 중국인들의 손에 큼직한 가방이 들려 있었는데, 그게 대부분 빈 가방이었다. 사람들은 “물가가 싼 홍콩에 쇼핑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잘사는 홍콩 사람이 물가 싼 중국에서 쇼핑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라? 선입관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과거에도 선전은 홍콩으로 떠나려는 중국인들로 붐볐다. 두툼한 돈지갑으로 무장한 쇼핑객이 아니라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풍요로운 홍콩으로 탈출하려는 밀입국 행렬이란 게 차이점이었다. 지난달부터 방영되고 있는 48부작 드라마 ‘역사적 전환기의 덩샤오핑’의 첫 회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1977년 어느 날 덩샤오핑에게 광둥군구 사령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중국 청년들이 선전으로 몰려와 밀항하고 있으니 대책이 필요합니다.” 덩샤오핑의 대책은 경비를 강화해 밀입국을 막는 게 아니라 선전을 특구로 만들어 경제 수준을 홍콩 이상으로 끌어올리라는 지시였다.

 쇼핑객들의 틈에 섞여 홍콩으로 건너가봤다. 예전에 못 보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친중(親中) 단체와 반중(反中) 단체 회원들이 나란히 옆에 서서 각자 선전물을 나눠주는 모습이었다. 신문 보도를 봐도 친중과 반중의 논조로 홍콩이 나뉘어 있었다. 그 불씨는 2017년 처음 시행되는 행정장관 직선제를 둘러싼 대립이다. 중국 정부는 추천위원회의 과반수 지지를 받은 후보 2~3명에게만 입후보 자격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반중 인사의 출마를 봉쇄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야권과 시민단체·학생은 “진정한 보통선거가 아니다”며 불복종 운동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런 배경엔 중국 정부의 달라진 홍콩 정책이 있다. 지난 6월 중국 국무원이 최초로 내놓은 ‘홍콩백서’엔 “홍콩의 자치권은 중앙정부가 부여하는 것 이상으로는 누릴 수 없다”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에는 한계와 기준이 따른다”고 돼 있다. 홍콩 정책의 대원칙인 ‘일국양제(一國兩制)’에도 “양제는 일국에 귀속되는 것으로, 양제와 일국을 동등한 가치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홍콩은 어디까지나 중국의 일부일 뿐이라고 못 박는 표현인 셈이다. 앞으로 특별대우를 점점 줄여 나가겠다는 예고로도 들린다. 홍콩 주민들의 동요를 막고 안정을 유지하는 걸 최우선시했던 예전 정부에선 볼 수 없던 표현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홍콩은 중국과 외부 세계를 이어주는 창구였고 외부의 문물과 사상이 유입되는 통로다. 하지만 중국 중앙정부로선 서구민주주의의 핵심인 보통선거는 끝까지 막아야 할 마지노선이다. 2017년이 다가올수록 이 마지노선 양편의 대립은 점점 더 심화될 것이다. 홍콩의 정체성을 둘러싼 근본적 물음이 다시 제기된 것이다. 일국양제의 창시자 덩샤오핑이 살아 있다면 어떤 해법을 내놓을까.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