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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밤의 "공포"수원|잠자는 여아만 납치기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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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수원=정연복·권일 기자】삼복무더위에 겹쳐 어린이 납치공포증으로 30만 시민이 한여름밤잠을 설치고 있다. 어린이 납치미수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한 수원에서는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에서도 저녁이면 창문을 모두 잠그고 어린이들의 야간외출을, 금지시키는가 하면 반상회를 통해 비상 신고망까지 조직하는 등 언제 또 발생할지 모를 어린이 납치사건에 대비하느라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있다.
경찰은 경무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동일 범으로 보이는 법인 수색에 열을 올리는 한편 또 다른 범행 방지에 안간힘을 쓰고있다.
범인은 3차례 모두 금품에는 전혀 손도 대지 않고 10살 이하의 어린이만 노려 유유히 범행했으며 그중 두번은 9살 된 여자어린이를 노렸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불안은 더욱 크다.

<제1범행>
무더위가 극성을 부린 18일 밤11시30분쯤 수원시 남수원동72 남수식품(주인 이남회·36) 앞길에서 잠자던 이씨의 장녀 지연양(9·신풍국교2년)이 정체 모를 범인에 의해 집에서 8백m쯤 떨어진 수원성봉화대 밑에까지 끌려가 있는 것을 수색에 나선 주민·부모가 발견했으나 범인은 달아나고 지연양은 무사했다.
어머니 정수옥씨(31)는 날이 더워 지연양·주호군(7)남매를 가계앞길에 돗자리를 깔고 재웠는데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지연양만 없어졌더라는 것.
이씨 부부와 주민 6명은 오토바이 3대를 동원, 집 뒤쪽 수원성곽 밑 숲속을 l시간30분쯤 찾아 헤매다 19일 새벽1시쯤 아카시아 숲이 우거진 으슥한 웅덩이에서 지연양을 품에 안고 누워 있는 범인을 발견, 플래시를 비추자 그대로 달아났다.
이때 법인은 회색 반팔 와이셔츠를 땅바닥에 깔고 있었으며 담배(거북선)·성냥·샌들l짝(왼쪽)등을 함께 떨어뜨린 채 달아났다.

<제2범행>
19일 새벽2시쯤 제1범행장소에서 1㎞쯤 떨어진 연무동193의8 심승섭씨(33) 집 문간방의 창문을 뜯고 범인이 침입했으나 피해는 없었다.
당시 심씨 부부는 밤낚시를 가고 장남 재홍(10·연무국교3년)·재동(7)군 형제가 자고 있었는데 범인은 가로·세로50m쯤 된 창문을 뜯어 밖으로 내놓고 들어갔다. 재홍군이 잠결에 눈을 뜨자 범인은 잠자던 어린이들을 노려보다가 발자국만 남겨놓고 사라졌다.

<제3범행>
19일 새벽2시10분쯤 심씨 집에서 30m쯤 떨어진 이춘택씨(36·보일러공) 집 안방에서 잠자던 이씨의 장녀 민비양(9·연무국교3년)이 납치됐다가 뒤쫓은 아버지 이씨에 의해 구출됐다. 범인은 안방에서 자고있던 민비양을 이불로 싼 뒤 마당장독대에 올라 높이 2m쯤 된 담장 밖으로 내던진 뒤 담을 뛰어내려 민비양을 안고 30여m 달아나다 아버지 이씨가 뒤쫓자 민비양을 버렸다. 이때 민비양은 오른쪽팔목 골절상 등 4주의 중상을 입었다.
이씨에 따르면 당시 방안에는 부인 김소희씨(27)와 장남 승혜(6)·2남 승민(2)군이 문 앞에서, 민비양은 방 안쪽에서 자고 있었는데 범인은 방안까지 들어가 맨 끝에서 자던 민비양을 납치하려했다는 것.

<수사>
경찰은 세사건의 범인이 동일범이며 단독범으로, 정신병자이거나 변태성욕자의 소행으로 보고있다.
특히 범인이 여자어린이만을 노렸고 2차 범행 때 남자어린이 2명만 자고있었는데 무사했으며, 지연양을 성곽 밑으로 안고가 1시간쯤 품에 안고 누워있었던 것으로 보아 변태성욕자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있다.
또 범행대상이 부유층이 아닌 서민들로 그중 생활이 나은 편인 지연양의 경우 멀리 달아날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도 8백m떨어진 숲 속에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아 금품이나 원한에 의한 납치기도는 아닌 것으로 보고있다.
범인이 남긴 와이셔츠는 등에 기름때가 많이 묻어있고 주머니에 왕겨가 들어있으며 샌들도 낡아 끈이 떨어져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방앗간·차량·기계정비업소의 종업원을 상대로 수사

<범인>
지연양과 목격자의 말을 종합하면 법인은 25∼30살로 보통 키에 텁수룩한 머리, 회색바지를 입고 경상도 말씨를 썼다.
지연양은 범인이 성곽 밑에서 와이셔츠를 벗고 자신을 안고 있었을 때 런닝셔츠에서 땀 냄새가 많이 났다고 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검은색 샌들 l짝도 끈이 끊어진 조잡품으로 무명메이커 제품이었고 와이셔츠에는「신한산업사」란 상표가 붙어있었다.
지연양은 범인이 운동모자를 쓰고 있었다고 했으나 다른 목격자들은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있었다고 엇갈린 진술을 하고있다.

<주민표정>
사건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한 여름인데도 창문을 모두 잠그고 자는 등 불안해하고 있다.
한순자씨(33·여·연무동176)는 10살된 딸과 어린 아들 형제를 밤에는 절대로 외출을 금지시키고 문을 잠근 채 딸을 품에 안고 자고있다고 했다.
장왕천씨(69·여·연무동193)는 이 동네에서 30년간 살았지만 싸움이나 도둑한번 없어 대문을 잠글 필요가 없었으나 요즈음은 불안해서 문단속을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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